어느 8순 노부부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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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0일 서울신림동에서 일어난 어느 8순노부부의 변사사건은 우리가정,사회가 안고 있는가족·인간관계의 냉혹하고 비정한 한단면을 보는것 같아 가슴을 친다.
25일만에 부모를 찾아온 아들에 의해 발견된 이 노부부의 사인은 아직 확실한 것을 알수없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할일은 사인보다는 6남매의 장성한친자식을 가진 8순의 노부부가 단칸 셋방에서 쓸쓸하게 살던 일 하며 사망한지 20여일이 지나도록 그들의 죽음을 아무도 몰랐던 원인은어디에 있는가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고독에 못이겨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늙어 쓸모 없게된 부모가 오늘의 번잡스러운 사회에서는 다만 거추장스런 존재로만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친자관계란 혈연과 인륜이란 원초적인 관계 이외에도 부양과 봉사의 책임과 의무를 가진관계임을 부인할수 없다. 이것은 인간된 도리이기도하다.
물론 자식이 직장을 쫓아 다니다보면 부모를 모실수 없는 불가피한 경우도 없진 않다. 또비록 부모와 자식 사이라해서 감정의 갈등과 의견의 대립이 없을 수는 없다. 이처럼 관계가원만치 못할 경우 서로의 편의에 따라 별거가 더욱 바람질스러울때도 있을것이다.
그렇다해도 자식된 도리로서 노쇠한 부모의 건강과 안녕은 항상염두에 두어야하며 수시로찾아가돌보고 위로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노인을 이웃으로 하고 있는 주변사람들도 노인들에게 관심을 갖는인정이 필요하다. 바로이웃하는 8순의 노인네들이 20여일동안 인기척 하나 없는데도 무심히 지내왔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이기주의와이웃에 대한 비정한 무관심의 한단면을 보여준다.
「이웃사촌」이란 말도 있듯이 이웃이 이들을 부양까지는 못하겠지만 조금만 신경을 써준다면 이렇게 방기상태에까지는 이르지 않을것이다.
가정구성의 핵가족화와 타인에대한 철저한 무관심, 인간 상호간의 애정고갈은 어쩌면 이 시대의 불가피한 추세요,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흐름을 되돌릴수 없다해서 모두가 노인문제를 방치해 버릴수는 없는 것이다.
이럴때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특히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노인문제는 시급하다. 국가는 의지할데 없는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시설의 확충에 힘써야하고 사회는 고독한 노인들에게 락을 줄수있는 제도와 장치를 마련해야한다.
노인문제는 노인들만의, 혹은 부양해야할 노인이 있는 일부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젊은이들도 멀지않아 노인이 된다는것은 불변의 천리이다. 우리 모두의 문제요, 모든 개인의 문제이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날로 연장되고 있어 앞으로도 이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노인문제는 가정의 건강관리나 부양의 수단을 통해 이루어져야하며 기본적으로는 부양책임을 진 가족을 도덕적·정신적으로 격려해 주어야한다. 그러나 전체 사회가 현재와 미래의 문제로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일도 앞으로 더욱 확대·치중해야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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