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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해가 안 가는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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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주철환
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동네 카페에 알바 청년이 있었는데 이름이 독특했다. 성은 이, 이름은 해였다. 합쳐서 이해. 퇴근할 때 만나면 “이해가 가는구나”, 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구나” 하며 인사를 나눴다. 지금은 일을 그만둬 만나기 어려운 사이가 됐다.

 드라마 ‘프로듀사’를 보면서 청년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유는 단순하다. 김수현을 닮아서가 아니고 매회 프로그램 시작과 끝에 ‘○○의 이해’라는 말이 나와서다. 최종회 소제목은 ‘장수 프로그램의 이해’였다. 밑에 따라붙은 메시지가 여운을 남긴다. ‘처음을 잊지 않는다’.

 장수(고전)라는 말에 처음(초심)이라는 말까지 나오니 국어교사 출신은 문득 춘향이가 생각난다. 그 시절 교과서에는 이몽룡이 장원급제해 어사출또하는 장면까지만 실렸다. 이해가 안 가는 구석이 있었다. 왜 이도령은 춘향이까지 속였을까? 예능의 시각으로 보자면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거다. 월매는 수다쟁이니 그렇다 치자. 목에 칼까지 쓰며 고통스러워하는 처자를 눈앞에 두고서도 그는 왜 끝까지 거지 행세를 했을까? “나 사실은 암행어사야. (마패를 보여 주며) 조금만 참고 견뎌. 곧 너를 구할 테니까.” 춘향이가 기쁨을 못 참고 기밀을 누설할까 봐?

 나는 이해가 안 됐다. 혹시 이 사람 기회주의자가 아닐까? 춘향이도 장모처럼 태도가 돌변해 “너 같은 놈 믿고 기다린 내가 미쳤지”라며 옥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수청 들기로 가닥을 잡으면 “내 그럴 줄 알았다”며 과거를 툭툭 털고 새장가라도 갈 심산이었나? 반전의 날, 탐관오리의 잔칫상을 엎은 후에도 그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복면검사’ 행세를 한다. 춘향이 죽음을 각오한 걸 최종 확인한 뒤에야 본색을 밝힌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 결정적 순간이 돼서야 진실을 밝힌 이몽룡을 칭찬해야 하는 건가? 미덥지가 않다.

 춘향전이 만약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라면 어땠을까. 이몽룡의 시점, 성춘향의 시점, 변학도의 시점이 달랐을 거다.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고야 어찌 속내를 알 수 있겠는가. 유명인들의 떠도는 얘기를 듣다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말들이 더러 있다. 이때는 살짝 시점(視點)을 바꿔 본다. 만약 나라도 저런 상황에 처하면 저런 말밖에 할 수 없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갈 때는? 어쩌겠는가. 더디긴 하나 시점(時點)이라도 바뀌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첨부:이해는 이 글을 읽는 즉시 그 카페로 연락을 취하기 바란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