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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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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여자는 남자에게 사과 한 알을 건네며 말한다. “사과할게. 미안해.” 순정만화의 클리셰(상투적 장치) 같은 장면이다. 연애교습 책에는 이렇게 써있을 것 같다. ‘연인에게 귀엽게 사과하며 어필하는 법.’

 살다 보니 잘못이나 실수는 안 하는 게 좋지만, 만약 했다면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신속하고 진심일수록 좋다. 변명이나 버티기는 화를 키운다. 잘못했다는데, 반성한다는데 어쩌겠는가. 꼭 상황을 수습하는 효과적 방책이어서만은 아니다. 잘못한 자가 즉각 할 수 있는 유일한 ‘잘한 일’은 사과와 반성일 테니 말이다. “(사과하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1분은 자기를 기만한 며칠, 몇 달, 몇 년보다 값지다”(켄 블렌차드)는 말도 있다.

 최근 미국 명문대 동시합격이란 거짓말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소녀의 아버지가 언론사에 보낸 사과 글을 읽는다. “모든 것이 아이의 아픈 상태를 살피지 못하고, 도리어 부추긴 제 책임이고 잘못이다. 가족과 함께 아이를 돌보며 조용히 살아가겠다.” 변명 없는 깔끔한 사과에, 한 전문가는 ‘위기관리의 모범’이라는 평까지 내놨다. 비난 여론도 사그라들었다.

 역대 최고급 표절 의혹을 낳은 소설가 신경숙은 사과 대신 ‘유체이탈화법’ 해명을 택했다. “해당 소설은 읽어본 적도 없고, 이런 논란은 작가에게 상처가 되기 때문에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소설가 이순원의 말대로 “안 읽고도 다 베껴 쓸 수 있는 초절정의 유체이탈 독서법을 가졌단” 건지, 작가의 상처는 중요하고 독자의 충격은 관심 밖이란 건지, 스타작가답게 과오를 인정하는 것만 못한 대응에 대중의 실망이 더 커졌다.

 창비 출판사의 ‘유체이탈화법’도 그 못잖다. 처음엔 “몇몇 문장의 유사성으로 표절 운운은 문제”라고 발끈하더니 다음 날 사과문을 내고 “내부조율 없이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내보낸 것을 사과”했다.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야 했다”고도 했다. 표절이 아니라 자신들의 대응이 잘못이라는 사과다.

 이상한 사과는 또 있다. 사과를 받을 때와 사과할 때를 헷갈리는 것이다. 국민에게 사과를 해도 모자랄 대통령이 삼성서울병원장에게 머리 조아린 사과를 받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자 여론이 폭발했다. ‘메르스 환란’을 돌파해야 할 청와대의 현실인식 수준이 놀라울 뿐이다.

 “결국은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인생도, 가치도.” 문화평론가 김봉석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동감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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