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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들이 이야기로 마는 쿠바 시가…파는 법도 능수능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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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생산한 잎들로만 만든 수제시가 푸로.

“피그스만 공격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오. 덕분에 혁명정부의 지지 세력을 견고하게 다지고, 우리의 중산층 반대 세력을 잠재울 수 있었소.”

체 게바라가 케네디 대통령의 측근인 리처드 굿윈에게 쿠바산 시가 두 상자를 건네며 말했다. 케네디와 굿윈에게 하나씩 주는 선물이었다. 1961년 8월 우루과이에서 열린 미주 외교 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대화였다.

‘적장에게 글을 쓰는 것은 힘든 일이니 그냥 손만 내밀겠소.’ 케네디에게 보내는 상자에 체는 이렇게 적었다.

케네디가 쿠바 시가를 사랑했던 일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쿠바 경제제재에서 막판까지 시가를 제외하려 했던 케네디는 플로리다의 시가 제조업자들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수입 금지 품목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

피그스만 공격이 실패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케네디는 또 다른 시가 애호가인 백악관 대변인 피에르 샐린저에게 쿠바산 수제 시가 1000개를 구해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일찍 샐린저를 불러 시가가 몇 개나 준비됐는지 물었다. “1200개 구했습니다.” “환상적이군(Fantastic)!”

케네디는 환호하며 서랍을 열어 서류를 하나 꺼내 서명했다. 그 문서가 바로 기존에 실행되고 있었던 대쿠바 경제제재를, 시가를 포함한 거의 모든 품목의 통상 금지로 확장시킨 ‘3447 성명서’였다. 1962년 2월에 발표한 그 성명은 미국에서 쿠바산 시가가 유통되는 것을 2015년 1월까지 불법으로 만들어버렸다.

농부 후안과 나는 굵직한 시가를 한 대씩 피우며 시가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눴다. 둘이 뿜어내는 연기는 서로 엉켜 몽실몽실한 솜사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케네디가 그 1200대를 다 피우고 죽었을까?”
“1963년에 암살당했으니까, 하루에 두 대 이상 피웠으면 가능했겠다. 근데 후안, 이런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렇게 많이 알아?”

케네디가 시가를 몇 대 피웠는지보다 나는 그게 더 궁금했다. 체와 케네디는 물론이고 16세기의 애연가 월터 롤리 경이 시가 연기의 무게를 잰 사연까지 아는 박식한 후안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 캐나다 관광객들이 알려준 이야기들이지.”

밭가는 소 이름이 ‘라울’과 ‘피델’

쿠바에서 독특한 풍경을 구경하고 싶다면 서부로 가야 한다. 아바나에서 출발해 피날델리오(Pinar del Rio) 지방으로 한참을 가다 보면 원뿔 모양의 석회산인 모고테(mogote)들이 띄엄띄엄 나타나기 시작한다. 비날레스(Vinales)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모고테들은 1억 6000만 년 전 쥐라기 시대에 해저에 있던 석회지층이 밀려 올라오며 형성됐다고 한다. 구멍이 뻥뻥 나있는 모고테들은 하나같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과 터널을 갖고 있다. 몇몇 동굴들은 식당으로 쓰일 정도로 크고, 대부분의 터널은 마을의 샛길로 사용된다.

녹색 초목의 외피를 덮고 있는 모고테들은 하얀 ‘속살’ 석회암들을 노출하며 명암의 대비를 연출해낸다. 특히 산등선 아래로 펼쳐진 붉은 토양의 담배 밭과 조화를 이루는 장관은 온갖 상념을 다 날려버릴 정도로 후련하다.

서부지역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백인 농부들은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에서나 볼 수 있는 카라바오(carabao) 물소들이 짝을 이룬 달구지 쟁기로 담배 밭을 간다. 달구지를 끄는 소들에게는 각기 이름이 있었다. 하나는 라울, 또 하나는 피델이었다. 농담이 아니다. 동서부를 막론하고 내가 만나본 쿠바 농촌의 달구지는 모두 ‘피델’과 ‘라울’이 끌고 있었다. 농부들은 소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채찍질을 해서 보는 이를 웃음 짓게 한다.

2층 이상의 집을 볼 수 없는 그 촌마을은 많은 유럽인이 자연환경을 즐기기 위해 장기체류하는 명소이기도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시가를 재배하고 만들어내는 농장들을 직접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비날레스에서 삼대째 담배 농사를 짓고 있는 후안이 시가를 재배하고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줬다.

자체 생산 잎들로만 만든 푸로 시가

시가 담배 씨앗은 깨알보다 작았다. 아니 미세했다. 그 씨앗을 뿌린 후 100일 정도 경작하면, 놀라운 정도로 잎이 커다래지고 성인 키만 해진다. 이를 수확해 잎들이 붉은 황색으로 변할 때까지 60일 가량 서늘한 오두막에서 건조시킨다. 말린 잎은 향과 맛에 따라 나뉘고, 꿀과 술 외에도 여러 향료와 함께 궤짝에 재 놓는다. 적절한 기간이 지나 숙성시킨 잎을 다시 음지에서 말린다. 그 잎들을 잘라 용도와 기호에 알맞게 촘촘히 말면 시가가 완성되는 것이다.

‘맛의 농도’는 잎이 불에 타는 속도와 반비례한다. 그래서 시가의 안쪽에 말리는 부분일수록 늦게 타는 잎을 사용하고, 겉포장에 가까운 부분은 가장 빨리 타는 잎을 사용한다. 시가의 가장 안쪽 ‘속’에 들어가는 잎들(criollo)은 그 시가 고유의 맛을 위해 여러 종류의 잎을 섞어 넣는다.

그 ‘속’을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부위(capote)는 주로 질기고 탄력 있는 잎을 사용한다. 모든 것을 포장하는 큰 잎사귀(corojo)는 시가의 첫 맛과 향 그리고 모양을 규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끄럽고 색상도 일관돼야 해서 가장 비싼 담배 잎을 사용한다.

시가는 너무 촘촘히 말아도 안 되고 너무 느슨하게 말아도 안 된다. 쿠바 시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결은, 가장 적절한 기후와 더불어 시가를 직접 손으로 마는 장인들 ‘또르세도레스(torcedores)’덕분이다. 이들의 실력은 자타 공인 세계 최고다. 중남미나 필리핀의 시가 농장으로부터 초청받아 거액의 돈을 받고 시범 행사를 하며 기술을 전수하기도 한다. 정성스럽게 재배하고 엄선한 재료를 자연과 더불어 숙성시켜 장인의 감각으로 만드는 쿠바 시가는, 우리의 간장, 김치 그리고 국수와 김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일반 담배처럼 시가 역시 종류가 다양하다. 맛과 향은 물론이고 모양과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거의 모든 시가는 여러 지역에서 재배된 잎들을 섞어서 만든다. 그러나 서부의 몇몇 농장에서는 자체 생산한 잎들로만 만든 푸로(puro)시가를 판다. 후안과 내가 피운 시가가 바로 푸로였다.

시가 한 대 같이 태우며 논하는 세상

우리는 다시 시가 애연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르크스에서부터 처칠까지, 마크 트웨인에서 베이브 루스까지. 잭 니콜슨에서 프로이트까지.

“프로이트는 시가를 빨았을까? 불었을까?”

나의 정신분석학적 질문에 후안은 박장대소했다.

‘후안이 쿠바식 사회주의 교육을 받아서 유식한 농부이지만, 아직은 자본주의의 물이 들지 않아 재배한 시가를 파는 데는 관심이 없고 나와 노닥거리기만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때쯤, 후안이 내게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거 쿠바 밖에서는 못 구하는 거니까 친구들한테 갖다 줘. 싸게 줄게. 인생에서 시가만 한 선물이 또 있을까? 연기는 사라지지만 시가가 남긴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영원하잖아?”

결국 나는 시가를 세 묶음 사고 말았다. 수제 명품 시가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든 것은 후안과 나눈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정작 후안은 시가를 자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가를 많이 피우면 구강암에 걸린다고 했다. 아무래도 환갑이 되기 전에 시가를 끊은 애연가 피델 카스트로의 영향을 받은 듯 했다.

이야기는 영원하다는 후안의 말에는 나름 진리가 있었다. 인생에서 이야기를 빼면 남는 건 많지 않다. 사실 쿠바 시가는 이야기로 만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르세도레스들이 담뱃잎을 말 때, 노동이 지루하지 않도록 작업장에서 고전문학을 읽어주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읽어줄 책과 읽어줄 ‘성우’는 물론 또르세도레스들이 정한다. 그래서 쿠바산 시가의 브랜드 중에는 ‘몬테 크리스토’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이름도 있다. 많은 이들에게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쿠바 시가는 처녀들이 말지 않는다. 대부분의 또르세도레스들은 남자들이다.

쿠바 깡촌의 담배 농부는 무식할 것이라는 내 무의식의 편견도, 순박하고 순진한 사회주의 체제의 농부는 장삿속이 없을 것이라고 넘겨짚은 것도, 결국 다 내 무지에서 나온 잘못된 추정과 확증 편향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두려움에서 나온 오해와 편견은 상상력을 제한한다. 우리는 보는 것을 믿기보다 믿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시가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두려움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게 된다.

사실을 넘어 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의 진정한 힘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고 각자에게, 또 관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리라.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또 우리가 또 누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르쳐준다. 인간의 조상이 정착해 농사를 짓기 훨씬 전 동굴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이야기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유연한 태도야말로 여행자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여행은 결국 미지의 세계와 연결하려는 시도이자, 이야기를 듣고, 모으고, 기억하는 과정이며 두려움을 정복하려는 노력이니까.

사람과 사람은 연결돼야 한다. 적과의 소통 역시 ‘손을 내미는’ 제스처로 시작된다. 그렇게 터진 물꼬로 한 때 원수였던 이들이 함께 시가를 피우며 묵직한 구름 덩어리를 만들어 내고, 또 ‘너’와 ‘나’가 중심인 각자의 이야기가 아닌 더 큰 ‘우리’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감독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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