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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명숙 사건에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인 대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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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상고심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겨졌다. 서울고법은 2013년 9월 건설업자에게서 9억원을 받은 혐의를 인정해 한 의원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현역 의원인 점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고심을 담당한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0개월 이상 결론을 내지 않다가 최근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재판장을 맡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13명의 대법관이 다수결로 결론을 내리는 사법부 최고 의결기구다. 주로 판례 변경 등이 필요한 사건을 맡는다.

 한 의원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질 만큼 사안이 복잡한지는 의심스럽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판결을 내리지 않던 해당 재판부가 박상옥 대법관의 취임과 함께 인적 구성이 완료되자마자 내놓은 조치치고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면피성 발언으로 일관하는 대법원 관계자들의 언행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는 마찬가지다.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는 대외비” “다시 소부로 갈 수도 있는 사건”이라는 등 여론의 비판을 막기에 급급했다.

 대법원 2부의 이번 조치로 한 의원 사건은 언제 결론이 날지 알 수 없게 됐다. 2010년 기소된 이후 이미 5년이 넘도록 심리만 진행 중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사법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미루는 사이 2012년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한 의원은 4년의 임기 중 3년을 채울 수 있었다. 법조계 일각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진 중인 상고법원 설치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이번 사건을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뒷말까지 나오고 있다.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라는 지적에는 뭐라고 할 것인가. 이러고도 최고 법원의 존엄과 권위를 주장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정치적 고려에 따른 대법원의 늑장 판결은 재판에 대한 신뢰는 물론 상고법원 설치에 대한 국민 여론만 나쁘게 할 뿐이다. 법원마저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이라면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