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흔들리는 불 「르노」자동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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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르노가 흔들리면 프랑스 경제가 동요한다. 르노자동차 그룹은 명실공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기업그룹이다.
국영 르노자동차 (RNUR)는 1899년 「루이· 르노」 가 창엄한「라 소시에테 르노 프레른가 그 모체다.
45년 다른 기간산업체들과 함께 국유화된 르노자동차는 당시 경제현실에 알맞은 소형승용차 「4CV」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 프랑스 제1의 승용차 생산업체로서의 발판을 굳혔다.
현재 종업원수는 21만4천명, 83년 매출액은 미국에 있는 자회사 아메리칸 모터즈 (AMC)와 매크의 매출액을 빼고도 1천1백2억프랑 (약9조5천억원)에 달했다. 자본금은 20억9천8백61만9천프랑 (약1천8백억원)으로 주식의 92%를 국가가 갖고 있다.

<종업원 21만명 넘어>
산하기업중 가장 큰 것이 산업용 특수차량과 트럭·버스등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르노 VI로 종업원이 2만8천명, 연간 매출액이 1백31억프랑이다. 자본금은 15억4천만프랑으로 주식의 99%를 국영 르노자동차가 보유하고 있다.
르노VI는 그 산하에 자동차공구·디젤엔진·철도·통신·사무용구·전자·섬유관련 생산업체인 코엘라를 비롯, 소방기구 생산의 카미바, 소방차량 전문생산의 알프스·앵상디·소마크등 10개의 산하기업을 거느린다.
이들 산하기업들은 다시 부동산·운수·여행사등 30여개의 관련산업에 90%이상 투자, 르노자동차가 프랑스 산업 전체에서 손을 대지않고 있는데를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베어링 제조판매의 SNR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이탈리아· 서독· 모로코· 영국· 스페인 등에 자회사를 갖고 있고 해상수송의 CAT도 벨기에·스페인·브라질·토고등에 자회사가 있다.
이처럼 방대한 기업그룹으로 그동안 프랑스 산업의 챔피언, 프랑스 최대의 자동차 산업, 프랑스의 대표적 상표로서의 자리를 지켜왔던 국영 르노자동차가 최근 프랑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가 지적했듯이 흔들리고 있다.
우선 자동차 시장점유율을 보더라도 르노자동차의 전락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1980년 프랑스국내자동차시장에서 르노가 차지했던 시장점유율은 40·5%로 국산·외국산 자동차를 통틀어 1위였다. 다음이 푸조자동차로 푸조가 합병했던 시트로엥·탈보 승용차를 모두 합쳐 36·6%의 점유율을 기록했고 외국산 자동차는22·9%에 머물렀다.
그러던 것이 84년에 들어와 프랑스 국내시장 점유율이 외국산 자동차 (35·8%), 푸조자동차(32·7%), 르노자동차 (31·6%) 순으로 뒤바뀌었다. 1위의 르노가 뒤로 처진 것이다.
사정은 유럽시장에서도 마찬가지. 80년 유럽시장 점유율이 르노(14·8%), 푸조 (14· 6%) ,폴크스바겐 (12· 1%), 피아트(12%), 포드 (11· 1%), GM (8·4%)순이였던 것이 84년엔 포드 (13· 1%), 피아트 (12· 8%) , 폴크스바겐 (11· 8%), 푸조 (11· 2%), GM (11· 2%), 르노(10·8%)순으로 변했다.
프랑스와 유럽시장에서 1위를 고루 차지했던 르노자동차가 4년 동안에 최하위로 곧두박질했다.
당연한 결과로서 르노자동차는 83년 28억3천1백만프랑 (약2천4백억원) 의 결손을 보았으며 이는 82년 7억5천1백만프랑의 4배가 넘는 것이다. 올해도 약1백억프랑 (약8천7백억원) 의 결손이 예상되고있다. 「베르나르·아농」 사장은 이미 금년 상반기에 34억프랑의 결손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르노의 신화는 사라졌다』 고 할만한 경영악화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이 나름대로의 원인분석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위기에 약한 그룹체질, 외국산 경쟁차의 공격에 속수무책인 기럽체질이 가장 큰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50년대말 미국시장을 겨냥해 개발했던 소형승용차 도핀이 크게 성공, 이에 힘입은 르노자동차는 61년 R4· R8· R12· R16을 계속 생산한데 이어 72년에 R5를 새로 내기까지 지난 20년동안 회사와 생산공장이 버섯 자라듯 커졌고 생산량도 4배가 늘었다.
그러나 기업의 양적확대에 걸맞는 질적변화가 없었던데서 문제가 생겨났다.
이른바 자급자족에 안주하느라 해외정보에 어두웠고 정보부족은 필연적으로 고객의 새로운 구미를 맞추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새로운 차종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84년에 개발,새로 선보인 슈퍼5가 예상과 달리 판매부진을 보이고 있는 것도 고객의 구미를 간파하지 못한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질적 노동자 파업>
생산시설의 낙후, 불필요한 과잉인력, 그에따른 임금압박이 생산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 것도 르노의 최약점이다.
르노자동차의 종업원 1인당 연간자동차 생산량은 9·7대. GM의 11, 피아트의 11·8, 포드의 13·2대보다 크게 떨어지고 있다.
81년 「미테랑」 대통령의 사회당 정부가 등장한뒤 보다 격렬해진 노동자들의 파업도 르노자동차가 안고 있는 고민거리.
지난 9월의 노동자 파업으로 1만2천대의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해 약8억프랑의 손해를 보았으며 요즘도 같은 파업으로 공장을 놀리는 때가 많다.
르노자동차의 한 간부가 『노동시간의 50%이상을 토론이나 협상등으로 날려 버리고 있으니 공장이 제대로 되겠는가』 고 개탄할 정도다. 사회당 정부 등장후 프랑스 노동자들의 파업은 유독 르노자동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산업부문에서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긴하다. 그러나 국영기업의 경우 대노조 대응력이 민간기업보다 약한 현실이어서 르노자동차가 받고 있는 위협은 다른 기업보다 더 크다.
부분적·점진적·전진적인 민영화만이 르노가 살수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도 이런데서 나오고 있다.
르노자동차의 국유화 이후 4번째 그룹총수가된 「아농」 사장은 최근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해마다 최소한 1개이상의 새모델 자동차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아농」 사장은 새모델의 지속적인 개발과 함께 자동차 생산공정의 현대화·로보트화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새모델 개발 안간힘>
그동안 생산시설의 현대화에 소홀히 했던 르노자동차가 뒤늦게 시설 현대화를 단시일에 추진하려면 상당한 투자가 필요할게 틀림없다.
현재 상태론 시설현대화를 위해 르노자동차는 매년 1백억프랑을 계속해서 투자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고 있다. 이는 전체 매출액의 9%에 상당하는 액수로 미국 자동차업계가 매출액의 2·5%를 해마다 투자하는데 불과한 것과 견주면 예사로운 부담이 아니다.
설령 이같은 경영개선노력이 실효를 거두더라도 지금의 르노자동차가 옛날의 프랑스의 대표적 상표로서의 영광을 되찾기까지엔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게 현지의 관측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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