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400홈런볼 얼마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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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프로야구 삼성-롯데전을 앞두고 포항구장 외야석은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400홈런 대기록 달성을 앞둔 이승엽(39·삼성)의 홈런볼을 줍기 위해서였다. 홈런이 터진 순간, 오른쪽 외야석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충남 천안에 사는 LG 팬 김모(43)씨가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아내에게 "등산을 다녀오겠다"고 둘러대고 포항에 내려간 김씨는 풀숲을 헤친 끝에 외야 관중석 밖으로 굴러간 공을 찾았다.

삼성 구단은 홈런공을 구단에 기증한 사람에게 최신형 휴대전화 1대와 해외 전지훈련 투어 2인 상품권, 이승엽의 친필사인 배트 등을 제공하고, 홈 경기 시구자로 초청하기로 했다. 금전적인 보상을 원할 경우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워놨다.

당시 김씨는 "아내와 상의한 뒤에 (기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김남형 삼성 라이온즈 홍보팀장은 "이튿날 통화를 했는데 그 이후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기증받는 게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대기록을 기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야구에서는 보통 구단에서 기념구를 챙겨 선수에게 전달하거나 구단 역사관에 보관한다. 그러나 홈런볼의 경우 일반 팬이 공을 습득할 확률이 높아 공을 기증받기 위한 협상이 필수적이다. 가치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으니 부르는 게 값이 된다.

'대기록의 사나이' 이승엽의 홈런은 특히 가치가 높다. 이승엽의 세계 최연소(만 26세10개월4일) 300호 홈런공은 지난 2013년 경매를 통해 1억2000만원에 팔렸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에게 넘어갈 뻔한 공을 구관영 에이스테크놀로지 회장이 낙찰받아 구단에 기증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기념구 경매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1998년 마크 맥과이어(52)가 때린 시즌 70호 홈런볼은 이듬해 300만5000달러(약 35억원)에 팔렸다. 2007년 배리 본즈(51)가 세운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 신기록인 756호 홈런볼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있다. 패션디자이너 마크 에코가 온라인 경매에 나온 공을 75만2467달러(약 8억 3000만원)에 낙찰받은 뒤 명예의 전당에 기증했다.

기념구를 구단 관계자나 동료 선수가 잡으면 협상이 비교적 수월하다. 2012년 7월 서울 목동에서 때린 이승엽의 한·일 통산 500호 홈런볼은 오른쪽 담장 뒤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동료 투수 안지만이 잡아 구단에 바로 기증했다. 이승엽이 2003년 기록한 아시아 한 시즌 최다인 56호 홈런공도 구단 협력업체 직원이 잡아 구단에 넘겨줬다.

신인 선수가 데뷔 첫 안타·홈런·타점 등을 기록했을 때 팀 선배들은 축하의 의미로 기념구를 챙겨준다. 지난해 LG 채은성(25)이 데뷔 안타를 때렸을 때 양상문(54) LG 감독은 '대(大)선수가 되라'는 문구를 써줬다.

미국에서도 기념구를 챙기는 관습은 다르지 않다. 15일 디트로이트전에서 첫 안타를 기록한 클리블랜드의 신인 프란시스코 린도어(22)는 경기 후 라커룸에서 '선발투수진 일동' 명의로 된 편지를 발견했다. 편지에는 팀 선발투수 5명이 린도어에게 '첫 안타 기념구를 최신 삼성전자 제품과 교환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린도어는 트위터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2시즌 연봉을 털어도 비용을 댈 수 없다" 며 엄살을 피우기도 했다.

지난 2일엔 클리블랜드의 브랜든 모스(32)가 개인 통산 100호 홈런을 날리자 팀 불펜투수들이 홈런볼을 주운 뒤 애플 전자제품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은 지난 8일 공개 석상에서 "클리블랜드 선수들에게 우리 제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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