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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원 새회장 이해랑씨에 듣는다|"고급문화와 대중문화는 공존해야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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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20대 예술원회장으로 선출된 이해랑씨. 그는 8,9대 국회의원으로 있던 5년간의「외도」끝에 다시「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올해68세)답지 않게 아직도 동안의 웃음을 그대로 간직한 정정한 모습이다.
우선「정치」하셨던 얘기부터 들려 주시지오.『정치, 말도 말아요. 대립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정치더군요. 한마디로 비정의 세계입니다. 창조적인 쾌감도 얻을수 없어요. 예술인들은 조화속에 창조를 찾으려 애쓰는데 거기는 그렇지 않아요. 정치는 예술인에게 큰 손해입니다. 생리에 맞지 않아요』
-그래도 「레이건」은 유명한 정치가가 됐는데요.『그분은 풍부한 인간성과 용화력을 지녔어요. 보통사람과는 달라요』
-원로연극인으로서 요즘의 연극을 어떻게 보십니까?
『창조적인 노력이 아쉽다고 할까, 뭔가 부족합니다.
맛도 멋도 없어요. 연극은 인간의식의 심층을 표출해야 합니다. 요즘 연극은 직선적인 표현·동작을 즐겨 구사합니다. 그러니까 깊이가 없어요. 그런 것은 영화나 TV가 할일이예요.
어떤 작품은 열흘정도 연습하고 무대에 올린다고 하는데 거기서 진실된 창조의 노력이 나올수 있읍니까? 피상적·표피적 대사만 외려면 뭣때문에 연극이 존재할 필요가 있읍니까』 -극장엘 가고, 오페라를 보고, 회화전시회에서 유명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게 고급문화라면 지금 우리나라에선 이를 즐길수 있는 사람이 퍽 제한돼 있읍니다.
거기다 대중문화는 오래전부터 저질시비가 일고 있읍니다. 이런 문화풍토를 어떻게 보십니까?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공존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고급문화가 손재하면 통속적인 저급문화도 존재하는 것이지요. 연극에 국한시켜 말한다면 신극과 신파극이 병존한 적이 있었읍니다. 신파극은 바로 일본이 전쟁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만든 통속극이지요. 반면 신극은「입센」「오닐」등의 정통연극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대중문화가 저질화 되는것에 대해선 저는 물론 반대입니다』
-실험예술, 전위예술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도 잘 모릅니다. 모르겠다고 하니까 어떤 분이 사실적으로 보려하니까 모르지 느낌으로 솔직이 받아들이면 왜 모르겠느냐고 반박하는 분이 있습디다. 결국 실험을 하다가 리얼리즘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또 리얼리즘에 지쳐 전위예술을 시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예술가의 이런 변신은 일단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요즘 예술인들은 각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일반론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십니까?
『제가 고생한 얘기 후배한테 들려줘야 쓸데없어요. 고생이나 가난이 영광은 아니죠. 그러나 예술가에게 있어 열정은 근본조건입니다.
우리세대는 부산 피난시절에도 연극을 했고 또 많은 관객들 모았어요.「햄릿」「오델로」「맥베드」, 유치진의 「나도 인간이 되련다」등이 모두 부산 피난시절에 공연된 것입니다. 배고픔을 잊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노력, 이것 없인 이런일이 이루어질수 없지요』
-자꾸 노력을 강조하시는데 연극인으로서의 노력이라면….
『가령 제가 「햄릿」으로 무대에 섰다면 나 자신이 「햄릿」이 돼야합니다. 그러면 귓속에 「햄릿」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는 이렇게 움직이고, 말했으면 좋겠다>이 소리가 귓속에, 가슴속에 울려옵니다.』
-요즘 전통문화가 강조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제는 전통문화의 원형보존이냐, 현대적으로 대중화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인간문화재등을 지정하여 원형을 보존하자는 쪽에 저는 찬성합니다.
전통문화의 대중화에는 큰모험이 뒤따릅니다. 흥미본위, 위락적인 면으로 빠질 위험이 있지요. 이것을 굳이 놀이로 바꾸려 한다면 그 작품은 예술적으로 승화된 것이라야 합니다』
-이제 예술원의 운영문제에 대해 한 말씀 하실때가 됐습니다.
『지금 예술원 정회원은 50명인데 정년이 70세입니다. 70세 이상이면 원로회원이 되는데 이 숫자가 15명으로 제한돼 있어 부득이 예술원을 떠나야 합니다. 정회원의 정년연장, 가급적 77세, 또 원로회원의 증원이 당면문제입니다.
나라 최고의 아카데미에 무슨 나이제한, 정원제한을 둬야합니까.』
-최근 논의되고 있는 예술인과 경제인의 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제인들이 조건없이 지원해준다면 반대 안합니다. 그러나 어떤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것이지요. 지원여부를 떠나 예술인들 스스로 다짐할 것은 가난은 창조의 자극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화=김성호<편집부국장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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