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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국 의료문화가 문제”라는 WHO 지적 뼈아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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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 환자가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는 의료 쇼핑, 입원 환자를 가족이 간병하는 관행, 문병 습관, 여러 환자가 뒤섞이는 다인 입원실 운영 등은 한국 특유의 의료 행태다. 이런 의료 문화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세계보건기구(WHO)와 한국 전문가로 이뤄진 합동평가단이 지난 13일 지적한 내용이다.

 사실 지적된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 의료계에서 의료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 중 환자들이 더 큰 병원으로 옮겨 다니는 의료 쇼핑은 한국 의료의 고질적인 문제의 하나다. 이미 수도권 대형병원의 응급실은 큰 병원에 입원을 원하는 환자들의 대기실로 변한 지 오래됐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낮은 의료수가가 의료기관의 문턱을 비정상적으로 낮춰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왜곡된 의료전달체계가 이번에는 감염병 확산의 기폭제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전국의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의료소비 왜곡 행태를 막기 위한 의료전달체계의 대대적인 정비에 나서야 한다. 이는 응급실의 감염병 대처 능력을 키우고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환자가 입원할 때 친족·친구가 동행하거나 문병하는 일은 2차 감염 확산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일상적인 문병은 지금이라도 병원 차원에서 통제할 수 있다. 의료계는 시스템 개선으로 병원감염 확산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환자 보호자와 관계자들은 인사치레를 위한 병문안을 삼가고, 의료기관은 보호자 동행을 요구하는 관행부터 재고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제도화해 문병이 환자와 보호자를 감염시키는 기회가 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다인 병실이나 가족간병 폐지는 한국 의료문화를 글로벌 수준에 맞추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이제 병원은 이런 시스템을 개선하고 의료 소비자는 비용을 부담하는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는 한국의 의료안전 수준을 높이기 위해 병원과 입원 시스템의 근원적인 손질에 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