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 대체 뭐부터 해야 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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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러스트=프리랜서 강일구]

타임 푸어
브리짓 슐트 지음
안진이 옮김, 더 퀘스트
516쪽, 1만5000원

표지를 보는 순간, 넘겨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제목은 ‘타임 푸어(Time Poor).’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래 편에 이렇게 적혀 있다. “왜 해도 해도 할 일이 줄지 않을까?” 내 말이…. 세 장쯤 읽었을 때 스마트폰이 울린다. 취재원과 통화를 하고, 방금 보냈다는 e메일을 확인한다. 회사 1층에 택배 기사가 기다린단 소식이다. 내려갔다 올라오니 부장에게 전화가 와 있다. ‘메르스’ 걱정하는 엄마 문자에 답도 해줘야 하고, 오늘은 은행 문 닫기 전에 꼭 들러야 하는데…. 정신이 없다. 『타임 푸어』라는 책을 읽을 ‘타임’이 ‘푸어’하다.

 저자는 한 단계 위다. 퓰리쳐상을 수상한 워싱턴포스트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그에겐 24시간 ‘해야 할 일’이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닌다. 운전을 하며 취재를 하고, 유치원 선생님과 상담도 한다. 회사에 잠시 앉아 기사를 쓰다 보면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올 시간이 된다. 아이들이 치과 진료를 받는 동안 복도에 앉아 업무지시 전화를 받는다. 컵케이크를 새벽 2시까지 굽고, 새벽 4시까지 기사를 마감한다. “조각조각 나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피로가 가득한” 생활이다. 항상 한번에 두 가지 넘는 일을 처리하지만, 훌륭하게 해내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 늘 허둥지둥 시간에 쫓기던 그는 어느 날 백기를 든다. “더는 이렇게 못 살겠어!”

브리짓 슐트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말했다. “가장 풍요롭고 완전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일·사랑·놀이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균형을 달성한다.” 근데, 진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건가. 저자는 취재를 시작한다. 나에겐 왜 이렇게 시간이 부족한지,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은지, 탈출구는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파리에서 열린 시간활용 학술대회에 참여한 그는 자신처럼 집 밖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들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다양한 통계를 만난다. 미국 맞벌이 부부의 경우, 여성 가사노동과 육아노동 시간은 남성의 두 배에 이른다. 일하는 엄마들은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데, 각각의 역할에서 처리해야 할 가짓수가 너무 많고, 책임은 무겁다!

 시간압박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스트레스는 인체의 면역체계를 악화시키고, 염증과 심혈관계 질환, 고혈압과 당뇨, 비만과 치매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 알면서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건 워킹맘을 짓누르는 두 가지의 명령 때문이다. 일단 일에서 ‘이상적인 노동자가 되라’는 명령, 이상적인 노동자란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완전히 헌신하는 노동자다. 두 번째는 ‘좋은 엄마가 되라’는 명령이다. 오늘날의 엄마들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그리고 교육을 위한 무한경쟁에 뛰어들었다 번번이 패배를 맛본다. “집과 직장 어느 쪽에도 완전히 마음을 쏟지 못하는 찜찜한 느낌”은 그렇게 계속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생생하고 눈물겹다. 하지만 진짜 궁금한 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다. 다행히 희망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가 있다. 덴마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덴마크는 기혼여성 80%가 일을 하는 나라인 동시에 주부가 하루에 가장 많은 여유시간(6시간 10분)을 갖는 나라다. 국가 경쟁력과 삶의 질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저자는 덴마크의 사례에서 쫓기는 삶에서의 탈출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을 본다. 사람들이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일에 파고들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신뢰할 만한 보육시설, 세계에서 가장 긴 유급 출산휴가(52주 동안 정상 월급의 80~100%를 받는다), 남자들의 적극적인 육아참여를 장려하는 분위기 등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덴마크로 이민을 갈 수는 없는 만큼, 마음가짐의 변화도 중요하다. 누구도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서는 과감히 “손을 놓아야” 한다. 성취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버리고, 무언가를 선택한 다음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시간 활용법도 충실하게 전하니 참고해볼 만 하다.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툴툴대는 당신이 지금 당장 펼쳐야 할 책이다.

글=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일러스트=프리랜서 강일구 ilgook@hanmail.net

[S BOX] 시간 활용 ? 리듬을 타세요

책 말미에 실린 부록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에서 저자는 타임 푸어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가짐과 생활수칙을 제안한다. 일할 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리듬을 타되, 덩어리로 쓰고, 뇌를 비우라고 말한다. 저자는 다음 몇 가지를 연습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춘다=시간을 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 생각해본다. 핵심 영역을 선정해 먼저 챙기고 다른 모든 일들은 내 시간과 에너지의 5% 이상을 잡아먹지 말아야 할 ‘나머지 5%’의 영역에 넣어둔다. 이 일들은 후다닥 해치운다.

 ▶작은 노트를 갖고 다닌다=예기치 못한 순간에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과 걱정을 기록한다. 그런 것을 적어놓을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돌아가는 테이프 소리가 멈춘다.

 ▶결정하는 피로를 줄인다=하루 일과의 어떤 부분을 규칙적인 의식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전날 밤에 운동복을 꺼내놓으면 다음 날 아침 운동하러 갈지 말지를 다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매일 아침 그날 할일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선택해 그 일부터 하려고 노력한다.

 ▶e메일은 낮 시간에 몰아서 확인한다=급한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때는 예외다. 그리고 가능하면 바로 답장을 보낸다. e메일 다운로드를 수동으로 바꿔 시시때때로 새 메일이 도착했음을 의식하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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