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해보니 적성 안맞아 봉사활동이 역시 내고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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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번에 새로운 통합조직이 생김으로써 명실공히 한국 자원봉사계가 하나로 뭉치게 됐습니다. 하나된 힘을 바탕으로 정부나 국회에 대담한 건의도 할 수 있고 자원봉사계의 공동 관심사도 조정.실행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3일 한국 자원봉사계의 기관.단체.센터 등을 총망라한 전국기구인 '한국자원봉사협의회'를 출범시킨 서영훈(徐英勳.81) 대한적십자사 총재.

徐총재는 이날 오후 서울 은행회관에서 한국자원봉사센터협의회.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 등 자원봉사 단체들과 공동으로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창립대회를 열고,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번 전국기구 출범은 비교적 짧은 국내 자원봉사운동 역사에서 의미가 크다. 국내 자원봉사운동은 1990년대 초 본격화했지만 아직까지 대표로 내세울 만한 전국기구 하나 없이 10여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94년 초부터 60여 단체들의 협소한 협의체로만 기능해왔던 한국자원봉사협의회 (한봉협)가 확대, 개편됨으로써 외곽에 있던 자원봉사센터.사회복지 단체들이 한 지붕 아래로 흡수된 점도 국내 자원봉사운동의 발전에 힘을 보태줄 것으로 기대된다.

"협의회의 수장을 맡은 것은 이 일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원봉사운동이 10년이나 됐지만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어요. 요즘처럼 네 편 내 편 하면서 서로 싸우는 분위기에서는 모두가 봉사의 정신을 되새기는 게 더욱 절실합니다. 앞으로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면서 남을 욕하거나 헐뜯지는 않도록 할 것입니다."

徐회장은 "새 협의회에는 전국 2백여 자원봉사센터들을 포함해 모두 5백여 단체가 참가하는 만큼 큰 위상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원봉사 정책개발, 전문인력 육성, 연구.조사 활동 등을 위해 협의회 산하에 한국자원봉사진흥원이라는 전문기구를 둘 방침이다.

그는 또 연내에 자원봉사활동진흥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발벗고 나설 계획이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대표 최고의원을 지냈던 徐대표는 2001년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취임했다.

"적십자사는 청년시절에 활동했던 곳이기 때문에 전혀 낯설지 않고 오히려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게 그의 소감이다.

그는 팔순을 넘은 나이인데도 건강해 보였다.

"매사에 과욕 부리지 않고 절제하려고 합니다. 가급적 화도 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인 듯합니다. 오전 5시30분이면 일어나 아내와 함께 집(서울 목동) 근처를 한 시간 동안 산책하고 가능한 한 채식으로 식사를 하고 있어요." 그가 밝히는 건강 관리법이다.

인터뷰 도중에 요즘의 국내 정치상황도 입에 올랐지만 그는 가능한 한 얘기를 삼갔다. 다만 "우리는 사회적으로 곪아 있던 문제들이 있어 내부 갈등이 많은 나라지만 곧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섞인 말만 했다.

적십자사 활동이 정치적 판단이나 활동을 일절 금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때 외도했던 정치에 대해 묻자 "정치를 해보니 역시 자질도 없고 적성에도 맞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요즘 70세 이상의 원로들과 한달에 한번 정도 만나 나라를 걱정하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홍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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