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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시장 … 경제 심리전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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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7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쇼핑객 2명이 인적 뜸한 상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평소 일요일 오후엔 골목이 인파로 붐볐지만 메르스 확산 이후 고객이 절반 넘게 줄었다. [신인섭 기자]

7일 오후 1시 경기도 평택의 A대형마트는 평소와 딴판이었다. 가족 쇼핑객으로 붐빌 일요일 오후였지만 한산했다. 23개의 계산대는 18개만 열었다. 매장 관계자는 “손님 수가 30~40% 줄었다”며 “가족 대신 대표로 한 명이 와서 재빨리 장을 보고 간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자가 집중 발생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평택만이 아니다. 이날 오후 3시 서울 중구의 롯데백화점 본점. 평일엔 그리 많지 않았던 ‘마스크 착용’ 손님이 크게 늘었다. 백화점 관계자는 “주말부터 사은 행사가 시작돼 본점 고객 수는 평소와 비슷하지만, 메르스 감염자가 나온 수원·대전점은 고객이 10% 줄었다”고 말했다.

 메르스 대란에 산업계의 고통이 점점 커지고 있다. 외출을 꺼리고, 모임을 기피하면서 돈이 돌지 않고 있다. 관광업계는 거의 공황 상태다. 7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1~4일 한국 여행을 취소한 외국인 관광객이 2만 명을 넘었다. 국내 1위 여행사인 하나투어 정기윤 팀장은 “지금까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트라우마가 있는 중국인 관광객의 취소가 대부분이었다”며 “5일부턴 일본인 관광객들이 가세하기 시작해 확산 여부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숨은 관광에 국한되지 않는다. 밀려드는 중국 소비자 덕분에 특수를 누린 화장품·면세점·항공운송·호텔레저 업종의 줄타격이 걱정된다.

 이영원 HMC투자증권 수석전략가는 “2003년 중국·홍콩 등에서 사스가 창궐했을 당시 국내에서 4명의 감염자가 보고됐지만 사망자는 없었다”며 “당시 관광·내수 등 경제적 피해도 미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엔 국내를 주 무대로 벌어지는 사태인 데다, 사망자가 나온 점이 다르다. 공포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제조업도 열외가 아니다. KOTRA는 9~11일 서울에서 해외 바이어들을 초청해 대규모 엔지니어링·건설 상담회를 개최한다. 동남아·중앙아시아·러시아 등 ‘공사 일감’이 많은 37개국에서 64개 기업이 참가한다. 그런데 호주·우즈베키스탄의 2개 사가 돌연 “참석을 취소한다”고 통보해 왔다. KOTRA 측은 “메르스 우려 때문에 입국을 꺼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이 주를 이룬다. 정훈석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르스의 업종별 영향은 확진환자 수와 궤를 같이할 것”이라며 “현재 병원 감염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는 단계”라고 강조했다. ‘경제는 심리’인데 여기서 밀리면 부수적 피해도 그만큼 커진다는 소리다.

 서울대 송병락(경제학) 명예교수도 ‘경제 심리전’을 강조했다. 송 교수는 “공기 전염 가능성 여부에 대해 당국이 메르스 정보를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면 내수가 추가로 위축되는 걸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도 “유통업·관광업 타격을 최소화하려면 당국이 중국·일본 등에 조속히 메르스를 차단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수가 침몰하기 전에 경제·외교 부처와 대사관·무역관이 적극 나서 정보를 제공하고, 대책도 설명하라는 촉구다.

글=김준술·구희령 기자 jsool@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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