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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공포 이용한 증시 작전 성행

중앙일보

입력

백신업체인 진원생명과학의 주가는 지난달 20일 9740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달 2일까지 9거래일 동안 하루만 빼고 연일 급등해 2만2800원이 됐다. 이 회사 주가를 끌어올린 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ㆍMERS)이었다. 메르스 환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지난달 27일 이 회사가 “관계사인 이노비오와 함께 메르스를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DNA 백신을 개발하기로 하고 했다”고 밝히자 주가는 활활 타올랐다. 메르스는 현재까지 밝혀진 치료제나 예방 백신이 없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가는 더욱 뜨거워졌다. 하지만 3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던 주가는 3일 돌연 하한가로 고꾸라지더니 4일에도 하한가로 장을 마감했다.

다른 백신관련 업체의 주가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동물백신업체인 중앙백신은 5월29일과 6월1ㆍ2일 연속 상한가까지 올랐다. 당시 많은 전문가가 “백신주가 오를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음에도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이틀간 연속 하한가로 주저앉았다. 주가 변동폭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제일바이오ㆍ이-글벳ㆍ바이오니아가 모두 같은 흐름을 보였다.

국내 증시에 메르스 공포를 이용한 ‘작전’과 한탕주의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메르스 확산으로 인한 불안 심리를 이용해 주가 조작에 나서는 세력이 늘어나는가 하면 불안정한 시장 흐름을 틈타 최대한 이익을 챙기려는 ‘한탕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이번 백신주의 주가 흐름이 전형적인 ‘작전(시세 조종)’의 행태를 보였다고 진단한다. 보통 작전 세력은 시장이 국내외 충격으로 흔들릴 때 유동성이 적고 루머가 통할만한 종목을 고른 뒤 매도 주문의 수십 배에 달하는 매수 주문을 내며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다. 이렇게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개인투자자는 정확한 정보 없이 루머와 분위기 등에 휩쓸려 추종 매수에 나서며 주가가 상한가에 도달한다. 개인투자자가 자석처럼 달라붙는다고 해서 일명 ‘자석 효과’다. 이때 작전 세력은 주가가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을 시장에 퍼뜨린 뒤 보유한 주식을 팔아치워 차익을 남긴다. 속칭 ‘상한가 굳히기’로 불리는 수법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메르스에 대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메르스 확산과 백신주의 실적과는 관련이 없다”며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이 백신 개발에 나서더라도 이를 위한 임상시험만 3~5년 걸리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는 최근 주가 흐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김현철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부장은 “시장 규모는 커졌는데 상승 동력이 없는 상태에서 메르스가 확산하니 투기 성향의 투자가 크게 늘고 있다”며 “급등락이 심한 종목이 주로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해 작전 세력을 찾아내고 있다”며 “특정 시점에 자주 나타나는 계좌, 여러 종목에 걸쳐 함께 움직이는 계좌 등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 건수는 178건으로 전년보다 4.3%(8건) 감소했다. 하지만 이 기간 금감원이 시세조종 혐의로 검찰에 이첩한 혐의자는 202명으로 전년보다 38%나 급등했다. 그만큼 시세 조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 투자자문의 주식운용본부장은 600여개의 계좌를 이용해 고가 매수 주문, 가장 매매 등의 수법으로 50만회에 걸쳐 1억3000만주에 대한 시세 조종을 하기도 했다.

김창규 기자 teent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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