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함성 속에 잊혀진 포성 … 그날의 여섯 용사 되살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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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월드컵의 축제 분위기가 전국을 뒤덮었던 2002년 6월 29일, 서해 바다는 비극적 사건으로 붉게 물들었다. 북한의 함포 공격으로 시작된 30분간의 격전으로 참수리 357호 고속정에 타고있던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당했다. 한국군의 승전으로 기록된 제2연평해전이다. 당시 상황을 극화한 영화 ‘연평해전’이 10일 관객을 찾는다.

10일 개봉 ‘연평해전’ 김학순 감독
참수리호 대원들의 뭉클한 전우애
30분 교전 시간 그대로 살려 재연
곡절 끝 시민들 후원 7년 만에 완성
“이데올로기 아닌 휴머니즘 영화”

 357호의 정장이자 강직한 품성의 윤영하(김무열), 타고난 뱃사람이면서 전우를 극진히 위했던 조타장 한상국(진구), 효심이 깊고 심성이 고운 의무병 박동혁(이현우). 영화는 이 세 사람의 절절한 가족사를 보여주고, 처절했던 해전 상황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전우애에 주목했다. 2일 이 작품을 연출한 김학순(61) 감독을 만났다. 그는 2008년 최순조 작가의 소설 『연평해전』(지성의샘)을 읽고 연출 결심을 굳혔다.

 “해군 출신이고,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의 아들로서 남북 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연평해전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 사건 속에 우리의 본질적 문제, 남북의 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나라 한쪽에선 축제가 열리는데 반대쪽에선 울부짖고 싸우는 전투가 벌어졌다. 또 그 사이에서 누군가의 귀한 자식들이 죽었다.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영화는 완성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투자에 난항을 겪으며 촬영이 중단됐고, 배급사도 바뀌었다. 2013년 6월 김 감독은 제작비를 구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즉 일반인에게 후원을 호소했다. 순제작비 60억원 가운데 20억원이 후원금으로 모였고 영화는 기적처럼 완성됐다. 7000여 명의 크라우드 펀딩 참여자는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감독은 “국민의 후원을 받으면서 끝까지 잘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커졌다”고 했다.

영화 ‘연평해전?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김학순 감독이 1일 언론 시사회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어디까지 실화이고 어디서부터 극화했나.

 “다큐가 아니고 상업 영화이기 때문에 실제 인물의 성격과 개인사는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영화적으로 변형했다. 실제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그대로 묘사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관객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고, 가장 효과적으로 연평해전의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2009년부터 인연을 맺은 유가족들에게 허락도 구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영화를 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더라.”

 -해전 장면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전투 장면은 실제 일어난 대로 찍고 싶었다. ‘람보’(1982)식 과장된 액션이 아니라 ‘풀 메탈 자켓’(1987)처럼 교전 속 인간의 두려움과 고통스러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30분이란 교전 시간을 살리고, 시간대별 동선을 꼼꼼히 체크했다.”

 -영결식을 당시 실제 영상으로 처리했는데.

 “고(故) 조천형 중사의 아내가 헌화를 하다가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이 슬픔은 연기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워낙 울림이 강했기 때문에 선택했고, 잘한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폐회식에 참석했다는 방송 뉴스가 흘러나온다. 당시 정부를 은연중에 비판하는 듯 보인다.

 “비판적 접근이나 정치적 해석은 아니다. 한쪽에선 축제 분위기인데, 한쪽에선 죽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리고 싶었다. 사실을 보여줬고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애국주의에 호소한 작품이라는 일부 시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선전영화, 반공영화는 내 체질이 아니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고 예술가다. 이데올로기적 접근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그린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는 동서양을 떠나서 전쟁 속 인간을 아련하게 그리지 않나. 인간과 생명의 고귀함, 전우를 위한 희생의 숭고함,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김효은·김나현 기자 hyoeun@joongang.co.kr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강성률 영화평론가): 가족 이야기로 신파적 눈물을, 처참하게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으로 분노를 자아내려는 목적이 명확하다. 목적만 남고 영화는 죽어버렸다.

★★★★(민병선 영화평론가): 전투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역사적 사건 깊숙이 관객을 인도한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연출 방식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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