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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패러독스’, 대통령의 방미 보따리에 담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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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우덕 기자 중앙일보 차이나랩 고문/상임기자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허쭤궁잉(윈윈 협력)’ ‘궁퉁파잔(共同發展·공동 발전)’. 요즘 중국 지도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이 말을 꺼낸다. 국가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의 슬로건 같다.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 신뢰 구축회의(CICA)’ 비정부 포럼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 참석자들은 여지 없이 ‘허쭤궁잉’ ‘아시아 운명공동체’ 등을 외쳤다. 그들이 ‘허쭤궁잉’을 주창하던 바로 그 시간(지난 26일 오전), 중국 국방부는 2015년 국방백서를 발표했다. 군 전략 개념을 일반 방어에서 적극적 방어로 수정한 게 눈에 띈다. ‘방어를 위해 제한적 선제 공격을 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대양(원양)해군 건설 의지도 분명히 했다. ‘허쭤궁잉’과 ‘대양해군’, 이 극단의 논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회의에서 만난 인도 저널리스트 인드라니 박치는 이 질문에 "중국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답했다. 그는 “일대일로 전략에 공을 들이고 있는 시진핑 주석이 최근 파키스탄을 방문해 약 450억 달러의 경제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며 “이는 인도 포위 전략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경제적 지원을 앞세운 중국이 ‘윈윈하자’고 이웃에 손을 내밀고 있지만, 주변국에서는 오히려 중국 위협론이 커지는 모습이다. ‘중국 역설’이다.

 ‘차이나 패러독스’는 아시아 곳곳에서 발견된다. 최근 취재차 다녀온 카자흐스탄에서도 그랬다. 대다수 알마티 주민에게 중국은 위협의 대상이었다. 한 통계국 직원은 “건설 공사를 위해 카자흐스탄에 온 중국 노동자들이 공사가 끝난 뒤 돌아가지 않고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대로 가다간 인구가 적은 카자흐스탄이 중국에 넘어갈 수도 있다”고 성토했다. 키르기스스탄의 기업인, 미얀마 교수, 몽골 관리 등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각각 이유는 달랐지만 중국을 불편해하고 있다는 점은 같았다. 심지어 중국과 일국양제(一國兩制)로 묶인 홍콩에서도 반중 정서가 퍼지고 있다.

 성균관대 이희옥(성균중국연구소 소장) 교수는 중국 위협론이 ‘(패권) 의도’ ‘(경제·군사적) 파워’, 그리고 ‘(주변국들의) 인식’ 등 3요소로 구성됐다고 본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중국위협=(의도X파워)+인식’이다.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패권 의도가 없다고 누차 강조한다. 그러나 주변국 국민에게 중국은 아직도 ‘말과 행동이 다른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크다. 대양해군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 주변국 협력을 위해 수백억 달러를 퍼붓는 중국으로서는 억울한 노릇이다.

 아시아의 독특한 정치·경제 환경이 낳은 산물이다. 21세기 글로벌 경제 환경은 협력과 개방, 공동발전 등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만큼은 유독 패권 경쟁이라는 20세기 냉전 유산이 공존하고 있다. 역내 또 다른 강국인 일본과 인도가 중국에 맞서고, 미국은 그 사이를 파고든다. 그런 점에서 ‘차이나 패러독스’는 아시아 지역의 긴밀한 경제협력 속에서도 정치·안보 차원의 갈등은 지속된다는 뜻의 ‘아시아 패러독스’와 맥을 같이한다. 패권 등장에 대한 우려와 견제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와 직결된 문제다. 우리나라 역시 ‘차이나 패러독스’에 갇혀 정책 수립에 실기를 한 경험이 있다. 미국 눈치 살피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의 적기를 놓친 게 그 한 사례다. 중국 관련 정책을 놓고 ‘윈윈협력’과 ‘패권의도’를 두고 고민하는 경우는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으로 패러독스를 돌파하라고 주문한다. 중국이 내건 경제분야 ‘허쭤궁잉’을 이길 논리는 없다. 당연히 합류해야 한다. 그런 한편으로는 전략적 필요성이 있다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긴 문제는 외교가 풀어야 할 몫이다.

 ‘아시아 패러독스’를 예민하게 관찰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곧 이뤄질 그의 미국 방문 보따리에 ‘차이나 패러독스’를 담아야 한다. 미국 역시 대립적 시각보다는 선택적 참여를 통해 중국을 제어하는 것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중국 문제를 푸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