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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노래 360만 곡 공짜로 제공 … K팝 확산 ‘리틀 이수만’ 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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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박수만 대표가 개발한 스마트폰 앱 비트에선 동요나 CCM도 들을 수 있다. 그는 “가요·팝 신곡 채널이 인기 있지만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따로 모아둘 수도 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물과 공기처럼 흔한 게 음악이다. 라디오에서, 거리에서, 커피숍에서 노래는 흐르고 또 흐른다. 숱한 뮤지션의 땀이 깃든 음악. 그래서 우리는 CD를 사고, 음원 값을 치른다. 한때 불법 다운로드가 횡행했지만 지금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제법 높아졌다. 아니, 음악 값이 무척 싸졌다. 멜론·지니뮤직·소리바다 등 음원서비스 업체에 담배 한 갑 값만 내면 한 달 내내 어떤 노래든 무한대로 즐길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이것도 비싼 걸까. 노래 360만 곡을 공짜로 제공하는 스마트폰 음악 앱(App) ‘비트(Beat)’가 인기다. 지난해 3월 출시 이후 1년2개월여 만에 누적 회원 300만을 넘어섰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게 세상사라지만 성장 속도가 놀랍다. 비트에는 음악 채널 60여 개가 24시간 운영된다. 라디오 방송 60여 곳이 개설된 셈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골라 들을 수도 있지만 돈과 선곡에 대한 고민 없이 음악에 몸을 맡기면 된다. 스마트폰이라는 전대미문의 괴물이 빚어낸 신풍속도다. ‘비트’를 개발한 비트패킹컴퍼니 박수만(45) 대표를 지난 25일 경기도 분당 회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수만 대표가 초창기 SNS ‘미투데이’를 개발했을 당시 열혈 사용자로부터 선물받은 그림. 휴대전화로 즐기는 만화경 세상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음악 산업의 최전선에 온 느낌이다.

 “모바일 환경이 이뤄낸 결과다. 무료 서비스라고 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공짜가 아니다. 소비자를 대신해 우리가 음원 값을 치르는 합법적 서비스다. 운영비는 광고비로 채운다. LP음반에서 CD로, CD에서 MP3파일 다운로드로,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서버에 저장된 음원을 실시간으로 감상)으로 옮겨 온 음악 산업의 변화를 보여준다.”

 -스마트폰으로 듣는 라디오 같다.

 “그렇다. 우리도 처음으로 무료 라디오 개념으로 시작했다. 비디오가 라디오를 죽였다는 노래도 있었지만 모바일 덕분에 라디오가 부활했다고 보면 된다. 30개 채널에서 시작해 지금은 60개로 늘어났다. 최신 가요와 팝 채널, 1990년대·80년대 가요 채널, 사랑하거나 잠을 잘 때 듣는 음악 채널, 윤종신·악동뮤지션 등 전문 DJ 채널 등 다양하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이현우의 음악앨범’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등 지상파 라디오 다시 듣기 채널도 10개 있다.”

 -지상파 다시 듣기야 흔하지 않은가.

 “해당 방송사 사이트에 접속하면 되지만 그곳에는 음악이 없다. 내레이션만 들을 수 있다. 방송사 측이 저작권료를 별도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라디오 PD들이 우리를 직접 찾아와서 채널 게재를 요청했다. 서비스 초창기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다. 그만큼 인지도가 높아진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음악 사용료는 우리가 부담한다.”

 -사업이 순조롭게 풀렸나.

 “아니다. 사실 ‘비트’를 처음 내놓은 건 2013년 12월이었다. 예전에 테이프나 CD에 노래를 실어 선물했던 것처럼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친구나 지인에게 온라인으로 선물하는 개념이었다. 지금과 달리 유료였다. 승산이 있다고 내다봤는데, 반응이 전혀 없었다. 대부분 월정액으로 음악을 듣거나, 불법 복제를 하거나 그랬지 정작 돈을 따로 주고 구입하는 것을 꺼렸다. ‘(앱이) 예쁜 쓰레기 같다’ ‘쓸모가 없다’는 혹평을 들었다. 시쳇말로 멘붕이 왔다. 마누라가 왜 말리지 않았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다시 일어선 계기가 있다면.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무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판도라를 직접 접하게 됐다. 그전에도 이름은 들어봤지만 주목하지는 않았다. 음악 감상의 중심축이 광고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지옥에서 천국을 본 느낌이었다. 다시 투자자들을 만나 설득했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소비자는 광고를 싫어하는데.

 “15~20초 동영상 광고를 먼저 봐야 특정 채널 한 시간을 감상할 수 있다. 30분에 1회꼴로 15초짜리 오디오 광고도 나온다. 두 곡에 한 곡꼴로 배너 광고도 흐른다. 열혈 음악 팬이라면 우리 앱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게으른’ 편이다. 국내에 4000만 대의 스마트폰이 있다고 하지만 월정액 이용자는 통틀어 500만 대에서 정체한 상태다. 나머지 3500만 대는 무주공산이다. 그 가능성을 주목했다.”

 박 대표는 정보통신(IT)업계에서 이름이 난 편이다. 초창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서비스인 ‘미투데이(me2day)’를 2007년 만들어 돌풍을 일으켰고, 이후 네이버에 들어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밴드(Band)’ 개발도 주도했다. 명지대 컴퓨터공학과 학부·대학원을 나와 95년 국내 코스닥 기업 1호인 서울시스템에 입사한 이후 지난 20년간 국내 IT업계의 부침과 함께해 왔다. 사진·동영상 관리 스타트업 ‘엔비’ ‘더블트랙’ 등도 창업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 고등학교 때 레코드 회사 설립을 꿈꾸었고, 대학 때 재즈밴드에 참여하기도 했다. 40대 중반, 음악과 IT를 접목한 창업에 미래를 걸고 2년 전 억대 연봉을 받던 네이버를 나왔다. 그는 “국내 스타트업 대표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편”이라며 계면쩍어했다.

 -공짜 음악에 대한 우려도 크다.

 “현재 음악시장은 어느 정도 한계에 와 있다. 월정액 서비스 이용자가 거의 늘지 않고 있다. 불법 복제나 다운로드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비트는 음악 시장을 더 확대할 것으로 본다. 소비자가 들은 만큼 사용료가 저작권자에게 돌아간다.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한 셈이다. 세계적으로도 계속 커 가고 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판도라·스포티파이 등 광고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는 전년 대비 38.6% 성장했다.”

 -문제는 광고가 뒷받침할 수 있느냐다.

 “현재로선 적자다. 예컨대 이달에 총 1억여 곡을 틀었다. 저작권료로 8억원을 지출했지만 수입은 1억2000만원에 그쳤다. 그간 투자받은 180억원도 연말께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부터다. 2000만 회원 모집이 목표다. 2년 후에는 수지를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사업 구상 당시 말리던 투자자들도 지금은 ‘판단 잘했다’라며 밀어주는 편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닌가.

 “국내 모바일 광고시장은 올해 1조76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 6위 규모다. 음악만큼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콘텐트도 없다. 네이버에 다닐 때보다 현재 월급이 3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에너지는 넘친다. 마지막 창업이라고 여기고 있다. K팝 보급에도 힘을 쏟을 작정이다. 지난달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영국 등 7개국에 진출했다. 비트 글로벌 버전을 출시했다. 나라 수를 계속 늘려 갈 계획이다.”

 -음원 유통의 ‘이수만’을 꿈꾸나.

 “영광이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에 비교해주다니…. 이 회장 덕분에 한국의 뮤지션이 글로벌 스타가 되는 길이 열렸다. 저도 K팝 확산의 ‘리틀 이수만’이 되고 싶다. 시장은 넓다. 동남아에선 아직 저작권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않다. 현지 기획·광고사와 함께 커 가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창업하려는 청춘에게 한마디한다면.

 “모바일 덕분에 O2O(Online to Offline) 시장이 넓어졌다. 예전보다 운신의 폭이 커졌다. ‘배달의 민족’이 대표적이다. 창업을 하려면 무엇보다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예상 못한 것에 대처하고 등등. 음악 앱이기에 사업 초기에는 오디오 광고만 고려했다. 동영상 광고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네이버 밴드도 카톡에 대응하려는 위기의 산물이었다.”

[S BOX] 한 곡 듣는 데 7.2원 … 얼마나 적정한가

노래를 온라인으로 들을 때 그 값은 얼마나 될까. 2012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한국음원제작자협회 등이 합의한 징수규정에 따르면 스트리밍의 경우 곡당 소비자는 12원이다. 여기에 저작권료 60%를 적용해 1회 이용할 때마다 7.2원을 부과한다. 7.2원은 음반제작자에게 5.28원, 저작자(작곡·작사가)에게 1.2원, 실연자(가수·연주자 등)에게 0.72원씩 돌아간다. 노래 한 곡을 팔아도 1.2원밖에 못 받는다는 음악인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비트의 경우도 곡당 7.2원을 소비자 대신 내고 있다.

 음악팬이 많이 이용하는 월정액 서비스의 경우 곡당 스트리밍 가격은 6원이다. 저작권료를 적용하면 3.6원꼴이다. 해당 총액이 적어 월정액 서비스 업체의 경우 대부분 전체 매출액에서 저작권료 60%를 정산해 지불하고 있다.

 비트 같은 무료 스트리밍 업체의 경우 현재 명확한 징수규정이 없다.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업종이기 때문이다. 편의상 일반 스트리밍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박수만 대표는 “월정액 스트리밍 거래는 99%가 매출 기준으로 정산되고 있다. 비트에도 동일 규정을 적용해달라는 개정안을 요청한 상태”라며 “저작권료 부담을 덜고 다양한 서비스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도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 강민아 사무관은 “모두 돈이 걸린 민감한 사안이다. 이해당사자들의 합의가 있어야 개정안 승인이 가능하다”며 다음 달 열릴 관계업체 회의에서 구체적 토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규정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음악은 공짜라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작지 않다”고 설명했다.

글=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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