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율' 소동, 그 후 수원구장에선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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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수원 kt위즈파크. kt와 한화의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가 시끄러워졌다. kt 주장 신명철이 한화 벤치를 향해 강하게 불만을 드러내서였다. 양팀 선수단이 잠시 언쟁을 벌이는 듯 했지만 물리적 충돌 없이 상황은 종료됐다. 신명철이 화를 낸 건 이른바 '불문율' 때문이었다.

발단은 한화가 6-1로 앞선 9회 1사에서 강경학이 한 2루 도루였다. kt 내야진은 점수 차가 벌어진 상태에서 도루에 대해 전혀 대비하지 않았고, 강경학은 2루에 유유히 안착했다. 9회 말 kt 공격에서도 민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7회에 등판한 왼손투수 박정진이 선두 타자 장성호를 1루 땅볼로 잡은 뒤 오른손투수 김민우가 나왔다. 김민우가 김상현을 삼진 처리한 뒤에는 윤규진이 마운드에 올라왔고, 남은 아웃카운트 하나를 늘려 경기를 마무리했다.

kt 관계자는 경기 뒤 "9회 점수 차가 벌어진 상태에서 도루를 하고 투수교체를 한 것에 대해 신명철이 나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앞선 팀이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하는 '불문율'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경기 뒤 커뮤니티와 SNS는 양팀의 충돌로 뜨거웠다.

불문율은 말 그대로 정해지지 않은 규칙이다. 상대를 '동업자'로서 인식하고 기분을 해치는 플레이를 하자는 취지다. 어느 상황에서든 최선과 승리를 향해 뛰어야 하는 프로의식과는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불문율의 기준이나 해석에도 차이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지난달 12일 한화와 롯데의 경기에서 고의적으로 타자를 맞춰 대치 상황이 일어났던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롯데는 7-0으로 앞선 1회와 8-2로 앞선 6회, 황재균이 두 차례 도루를 시도하다 두 번이나 몸에 공을 맞았다.

이튿날 만난 사령탑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범현 kt 감독은 "경기 중에는 이런 일, 저런 일이 다 일어난다. 각 팀마다 상황과 전력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 감독은 "우리 팀 사정을 감안하면 나 역시도 5점 차에서 '스퀴즈'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투수 교체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1군에 없었던 선수들을 점검하고 싶었을 것이다. 최근 팀 분위기가 가라앉아있다 보니 우리 선수들이 다소 예민해서 충돌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근 한화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경기 당일 강경학이 도루를 시도하자 곧바로 허도환으로 교체했다. 벤치에서 뛰지 말라는 사인을 냈는데 뛰었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아서 바꿨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어 kt 벤치 쪽을 찾아 조범현 감독을 찾아 미안하다는 뜻도 전달했다.

김 감독은 "5점 차긴 했지만 김상현에게 큰 것을 맞는다면 분위기가 바뀔 수 있었다. 박정진이 8회를 마치고 한 타자를 더 상대할 수 있다고 해서 장성호를 막게 했다. 그리고 김상현이 떨어지는 공에 약한 편이라 (커브를 잘 던지는)김민우를 올렸다. 송창식이 발목을 삐었기 때문에 나갈 수 없었고, 윤규진을 앞으로 쓰기 위해서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양상문 LG 감독이 지난달 21일 우리와의 경기에서 9회에 투수 두 명을 올렸다. 나는 괜찮았는데 양 감독이 미안하다고 하더라. 야구란 게 그렇다. 서로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팬들의 뜨거웠던 반응과 달리 24일 평화로웠다. 조인성과 김태균, 김경언 등 한화 고참급 선수들은 kt 선수들을 찾아 인사를 나눴다. 선수들은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나눴다. 신명철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한화 팬들의 야유가 나오긴 했지만 경기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양팀 선수단은 그저 야구에 충실했다.

수원=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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