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모바일 기기 … 최근 10년간 선진국형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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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호 02면

우리나라 플래시메모리 제품 특허 세계 최다
기술력은 곧 제품 경쟁력을 의미한다. 제조업 시대 기술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오늘날 기술력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아이디어에 가깝다. 기술집약형 산업구조에서는 혁신적 아이디어 하나가 게임의 법칙을 바꾼다. 애플이 이를 잘 보여준다. 아이폰이 비싼 이유는 제조원가 때문이 아니다. 혁신적 기술에 붙는 ‘프리미엄’ 때문이다. 기업이 특허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다. 특허는 시장 장벽을 높여 기업 경쟁력을 공고히 만든다. 동시에 로열티나 특허소송을 통해 막대한 비용을 얻어내는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다.

특허로 본 ‘메이드 인 코리아’ 1등 제품 변천사

 그렇다면 특허기술 기준으로 우리나라 기술 경쟁력이 가장 높은 제품은 무엇일까. KISTI의 TOD를 통해 미국에 주요 제품 1만2960개를 추려 분석했다. 등록특허 건수로 우리나라가 1등인 제품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104개로 집계됐다. 이 기간에 우리가 미국에 등록한 특허(2371건) 중에서는 냉장고와 관련된 특허가 311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자레인지(294건), 비디오카세트리코더(146건), 세탁기(70건)를 포함하면 백색가전이 등록특허 수치로 상위 5개 품목 중 4개를 차지했다. 제품도 다양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등록한 특허 중 상위 5개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40%였다.

 2000년대 중반에 들면서 우리나라 제품 포트폴리오는 보다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앞선 10년과 비교할 때 최근 10년 사이(2005~2014년)에 미국 등록특허 건수 상위 5개의 제품이 크게 바뀌었다.

 1위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바일 통신단말기(2498건), 2위는 PDP(766건), 3위는 OLED(702건), 4위는 플래시메모리(589건)로 기술집약형 산업인 정보통신기술(ICT) 제품이 상위를 차지했다. 과거의 주력제품이던 냉장고는 5위다. 우리나라 등록특허 수는 1만5167건으로 5배 늘었다. 특허 등록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제품도 376개로 과거와 비교해 3배 이상 증가했다. KISTI 고병열 기술인텔리전스연구실장은 “우리나라는 가전제품에서 모바일 첨단 제품까지 폭넓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제품 포트폴리오도 선진국형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TOD 분석 결과를 보면 특허 기준으로 경쟁력이 가장 높은 제품 포트폴리오를 자랑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전 제품 가운데 61%에 해당하는 7930개로 등록특허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최근 10년 사이 의료 분야에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모바일 헬스케어의 핵심 기술인 진단센서 관련 특허는 98%를 미국이 갖고 있다. 인공심장박동기 같은 이식형 의료기기(93%), 스텐트(79%), 카테터(77%) 역시 미국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 의료기, 일 배터리, 독 기계 강세
소니, 도시바 등 전자제품의 전통 강호인 일본은 등록특허 1위 제품 수가 3083개로 2위를 차지했다. 전자식카메라(89%), 프린터 및 관련 제품(40~70%), 이미지프로세서(93%) 등에서 특허점유율이 높았다. 고분자연료전지(90%)와 비수성전해질이차전지(100%) 등 배터리 분야에서도 강세다. 기존에 1등 제품이었던 모바일 기기, 리튬배터리는 우리나라로 이동했다.

 독일은 정밀화학과 기계 분야를 중심으로 602개 제품에 등록특허가 가장 많았다. 미·일·독 3개국의 순위는 지난 20년간 변함이 없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3년 기술무역통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술무역 규모는 2003년 40억5300만 달러에서 2013년 188억8400만 달러로 3배 넘게 늘었다. 기술집약형 산업의 특성상 특허와 라이선싱 교류가 활발해지는 것(기술무역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시장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술수출 금액은 같은 기간 8억1600만 달러에서 68억4600만 달러로 증가했고, 기술도입액은 각각 32억3600만 달러에서 120억3800만 달러로 늘면서 적자를 면치 못했다. 기술도입액 상위 3개국은 미국 등록특허 기준으로 1위 제품이 많은 3개국과 정확히 일치했다.

 고 실장은 “산업 생태계가 빠르게 변하면서 갈수록 특허 분쟁과 기술 각축전이 치열해질 것”이라며 “신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강력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해 정부와 산·학·연이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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