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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저성장·양극화·저고용 문제 풀려면 분권·다극발전·공생의 시장경제로 변화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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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호 10면

박정희 모델은 1987년 시민항쟁과 노동자투쟁, 그리고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해체됐다. 박정희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이 개발독재와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발전국가모델인데, 정치 민주화와 노사관계 민주화 진전으로 이 중 개발독재 체제가 무너지는 한국경제의 제1대전환이 시작됐다.

새 모델 필요한 한국경제

 김영삼 정부(1993~98)는 개발독재 유산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자유시장시스템을 도입하고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93년 ‘외환 및 자본거래 자유화’를 했고, 94년 경제기획원을 재무부에 흡수하며 계획 산업정책을 포기했다. 금융사에 대한 규제도 완화했다. 문제는 이러한 자유화 정책으로 과잉투자가 이뤄져 대기업의 단기 해외차입이 급증했고, 이는 97년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의해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되면서 제2대전환이 이뤄진다. 바로 국가 주도 발전국가 모델의 해체다. 97년 이후 지금까지 여야가 번갈아 집권하는 정권교체가 있었고, 그때마다 각 정부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박정희 모델을 넘어서는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정립하지 못했다.

  현재 한국경제는 개발독재 유산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후유증 등으로 저성장, 양극화, 일자리 없는 성장, 빈약한 사회 투자라는 네 가지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97년 이후 주주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저성장 경향이 뚜렷해졌다. 기업들이 장기 투자를 기피하고 인적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면서 저투자와 성장잠재력 하락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둘째, 양극화 문제도 심각하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수도권-비수도권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부자-빈자 간 격차가 크게 확대됐다. 박정희 모델의 대기업 지배체제와 중앙집권-수도권 일극발전체제,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떠받드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부자 감세 정책이 주요 원인이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셋째, 일자리 없는 성장 문제다. 고용탄력성(경제성장률 1%당 고용증가율)은 81~85년 0.398이었으나 2006~2010년에는 -0.133으로 크게 하락했다. 경제가 성장하는데 일자리는 오히려 줄고 있는 것이다. 특히 높은 청년 실업률은 미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마지막으로 빈약한 사회투자는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연구개발 투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 수준인데 사회투자(GDP에 대한 공적 사회지출 비율)는 최하위 수준이다. 소득 불평등이 늘어나는데도 사회투자가 빈약하다 보니 사회통합이 안 돼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사회는 이제 박정희 모델을 넘어서는 새로운 한국 모델(New Korea Model)이 필요하다. 새 모델은 위에 언급한 네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이어야 한다. 여기에 담아야 할 여덟 가지 정책 의제를 제안한다.

 ①중앙집권 완화를 위해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해 입법·행정·재정권을 지역 정부에 넘기고 ②수도권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극발전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초광역경제권 단위로 지역별 성장축(growth pole)을 만들고 ③무한경쟁의 자유시장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공생적 시장경제 (symbiotic market economy)를 지향하고 ④주주 가치만이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⑤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한 새로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고 ⑥디지털 융합에 기초한 신제조업을 육성하는 신산업정책을 실시하고 ⑦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대신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며 ⑧증세를 통한 ‘고부담-고복지’ 체제를 확립하는 것 등이다.

  물론 새로운 한국 모델 정립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여야 간, 노사정, 그리고 민간 사이에 합의가 있어야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너무나 큰 입장차를 줄여, 과연 우리는 아버지 세대를 능가하는 새로운 한국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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