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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주의 전략 펼 땐 일대일 대응보다 일관성이 핵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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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5월 23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재재를 담은 이른바 5·24 조치다.

지금으로부터 꼭 5년 전인 2010년 5월 24일 대한민국 정부는 천안함 폭침을 북한 소행으로 결론내리고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이른바 5·24조치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냐는 것이 5년전 논쟁이었다면, 지금은 5·24조치를 해제해야 하느냐는 논쟁이 진행중이다. 한편에선 최근의 대북민간비료지원은 5·24조치에 위배하는 일관성 없는 정책이라고 비난하고, 다른 한편에선 5·24조치를 해제하지 않는 정부를 성토한다. 5·24조치를 그대로 유지하라고 주장하면 반(反)통일세력으로, 당장 해제하라고 말하면 종북세력으로 간주되는 것이 작금의 남남갈등이다.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다면 당연히 전략도 달라야 한다. 하지만 목표가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추진전략에 있어 극심한 이견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5·24조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측이나 해제해야 한다는 측이나 모두 남북한의 상호대립보다 상호협조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북한의 협조를 유도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지만 추진전략은 상반된 셈이다.

5·24조치를 옹호하는 측은 대북 제재로 북한 협력을 유도할 수 있으니 북한이 협조할 때까지 조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고, 5·24조치를 비판하는 측은 제재로는 협력을 유도할 수 없으니 조치를 당장 해제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한반도 평화 추진전략도 마찬가지다. 대북 유화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 상대와 친해져야 한다고 보고 있고, 반대로 대북 강경책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베게티우스의 고전적 경구에 충실한 것이다.

협력을 유도하는 대표적인 전략은 '상대가 협조할 때 나도 협조하고 상대가 배반할 때 나도 배반한다'는 상호주의전략이다. 내가 상호주의전략을 채택할 때 상대는 자신이 협조하면 상호협조가, 자신이 배반하면 상호배반이 되기 때문에 결국 상호협조 아니면 상호배반 가운데 선택하게 된다.

상호주의는 흔히 티포태(tit-for-tat·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혹은 보상보복으로 표현된다. 상호주의는 20세기 후반 게임이론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태초의 인간사회 때부터 사용되어왔다. 구약성서 출애굽기 21장은 “생명에는 생명을, 눈에는 눈을, 이에는 이를, 손에는 손을, 화상에는 화상을, 외상에는 외상을, 타박상에는 타박상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함무라비법전이나 탈무드에서도 탈리오(보복)에 관한 비슷한 문구를 담고 있다. 고대 한반도에서도 유사한 제도가 시행되었다. 남을 죽인 자는 죽여서 되갚는 것이 고조선 8금법의 첫 조항이었다. 이 모두가 남에게 행한 나쁜 짓 그대로 가해자에게 앙갚음함으로써 나쁜 짓을 억제하려는 방식이다.

이런 앙갚음은 감정을 억제시키고 대신 이성으로 해결하려는 역설적인 노력이었다. 이런 법제도가 도입되기 전 앙갚음은 훨씬 과도했다. 과도한 보복을 자제시키기 위한 취지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눈알 하나에 눈알 하나, 이빨 하나에 이빨 하나’ 방식이 적절하다고 본 것이었다.

현대사회는 그런 앙갚음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한다면 모두가 이빨 빠진 장님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뺨을 내밀라는 태도가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앙갚음이 나은지 관용이 나은지는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우리 사회에서 견해차를 논리로 해소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너무 따지면 ‘너 잘 났어, 정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정치사회 갈등의 다수는 정부 대 반(反)정부라는 구도 속의 양극화 결집에 다름 아니다. 민주국가일수록 여러 정책 대안의 비용과 효과를 객관적으로 따져 실제 정책을 선택한다. 대북정책도 정책목표와 정책환경에서 출발하여 엄격한 논리로 추론해야 남한 내 합의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엄격한 논리라는 맥락에서, 남한과 북한이 각각 협조와 제재라는 두 가지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간단한 남북한게임 모델을 만들어보자.

협조와 제재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나은지는 ① ② ③ ④ 결과가 어떠하냐에 달려있다. ①은 남북한 모두 협조하는 결과고, ④는 쌍방 모두 상대를 제재하는 결과다. 한국은 남북한이 함께 협력하는 것(①)을 최선의 결과로 인식하고, 북한만 협력하는 것(③)을 차선의 결과로 인식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한국의 선호도는 ①>③>④>②(일방적 양보를 최악으로 인식하는 상황) 아니면 ①>③>②>④(파국을 최악으로 인식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한국이 ①>③>②>④의 선호도를 보인다면 북한이 협조하든 말든 협조하는 것이 한국 자신에게 유리하다. 이처럼 상대 선택에 관계없이 늘 유리한 전략을 우위전략이라고 부른다.

반면 북한은 한한만의 양보·협력(②)을 최선의 결과로 인식하고, 또 남북한 대립·파국(④)이나 북한만의 양보·협력(③)보다 쌍방의 양보·협력(①)을 더 선호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북한의 선호도는 ②>①>③>④(파국을 최악으로 인식하는 상황) 아니면 ②>①>④>③(일방적 양보를 최악으로 인식하는 상황)이다. 북한이 ②>①>④>③의 선호도를 갖는다면 남한이 협조하든 말든 협조하지 않는 게 북한 자신에게 나은 우위전략이 된다.

남북 각각이 2개의 선호도를 갖는 상황에서는 네 가지 선호도 조합이 가능하다. 먼저, <표 2>의 상황 A에서 북한은 협조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고, 한국은 협조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선호도를 서로가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최악(④)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상호주의로 최선(①)을 추구하기는 어렵다. 이미 자신에게 최선(②)의 결과를 얻은 북한이 한국의 상호주의에 호응하여 상호협력(①)으로 갈 동기는 작다.

상황 B에서도 북한은 협조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이를 인지하는 한국은 자신에게 최악(②)의 결과보다 차악(④)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만일 이 상황에서 한국이 확고한 상호주의전략을 취할 수 있다면 상호배반(④)보다 상호협력(①)을 선호하는 북한은 이에 호응할 가능성이 높다.

상황 C의 한국은 북한이 협조하든 말든 상관없이 협조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를 인지하는 북한은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차선(①) 대신 최선(②)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최선의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굳이 상호주의에 호응할 동기는 작다.

상황 D는 상대 선택과 관계없는 우위전략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만일 한국이 확고한 상호주의전략을 고수할 수 있다면 북한은 한국의 상호주의에 호응하여 최악(④)을 피하고 상호협력이라는 차선(①)을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5·24조치를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해제해야 할지를 놓고 현재 국민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바람직한 대북 전략에 대해 합의가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종종 상황인식이 다르지 않음에도 대북 전략을 서로 다르게 주장하기도 한다. 상황이 A, B, C, D 혹은 기타 가운데 어떤 것인지는 사안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결과는 별 이견 없이 명확하게 정리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공유된 상황인식과 논리적 추론이 대북 전략 방향에 대한 합의를 가능하게 한다.

상호주의 효과를 보기 위해 상호주의적 대응 정도를 반드시 상대 행동과 동일하게, 즉 등가(等價)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이빨 하나에 이빨 하나’ 대신 ‘이빨 열 개에 이빨 하나’처럼 비례적으로 대응해도 상호협조가 가능하다. 또 반드시 곧바로 대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반응에 시차가 있더라도 상대 행동에 따라 행동한다는 일관성만 갖추면 상호협력의 결과가 가능하다.

상호주의전략은 철저한 이행이 중요하다. 유연하게 운용하는 상호주의는 상호협력이라는 상호주의 본연의 효과를 얻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상호주의전략이 확고하다고 상대가 인식해야만 상대는 자신의 협력이 곧 상호협력이고 또 자신의 배반은 곧 상호배반이라는 판단 아래 협력을 선택하려 한다.

상호주의전략은 자칫 갈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적절한 타협선에 대한 생각이 다를 때, 즉 양보로 행한 행위를 상대가 양보로 간주하지 않고 오히려 배신으로 보는 경우, 서로가 상대를 제재하여 갈등이 증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일방적 양보로 상호주의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호주의는 상대 마음을 바꾸는 전략이 아니다. 상대 행동에 영향을 주려는 시도다. 감흥을 통한 상대 마음 바꾸기는 상호주의보다 일방적인 양보로 더 가능하다. 북한이 좋아서 혹은 한국 정부가 싫어서 북한에 무조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그리고 북한 정권이 싫어서 북한에 무조건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것 모두 전략적 행동이 아니다. 상대가 좋든 싫든 자신에게 유리한 상대 행동과 결과를 유도하는 것이 전략적 태도다.

친구와도 깨질 수 있고 적이라도 이해관계가 맞으면 성사될 수 있는 것이 협상이다. 적대적 관계에서는 좋다거나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적대적 관계에서 사과는 일종의 굴복으로 받아들여진다. 적대적 상대에게 요구할 것은 사과보다 협조적 행동이다.

5·24조치를 해제하려면 북한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천안함 폭침과 아무 관계 없다고 주장하는 북한으로서는 잘못을 인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쁜 행동을 저질렀다고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 요구할 것은 과거 행위에 대한 사과보다 미래 행위에 대한 안전장치다. 서해, 특히 남측 수역에서 북한의 모든 군사적 활동을 금지하거나 감시받겠다는 북측의 협조적 행동이 사과보다 훨씬 중요하다.

상호협력은 쌍방이 상호배반보다 상호협력을 더 선호해야 그 의미를 갖는다. 상호협력에는 상호주의가 효과적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상호주의가 상호협력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 상호주의로 상호협력을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지금 당장의 이득뿐 아니라 미래에 얻을 이득도 중시해야 한다. 각 상황에 맞는 전략의 정확한 계산은 남북 간 그리고 남남 간 갈등해소에 필요하다. 전략의 엄격한 계산은 최선의 결과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도 가능하게 만든다.

김재한 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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