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6)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69)「구인회」의 조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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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연회관계사람들의 학예부장 초대가 내일 있으니 내일 상허 이○준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두 사람과 헤어졌는데 그 날 연회에 이○준이 안나왔다. 상허는 술을 마시지 않으므로 술마시는 이런 연회를 싫어했고 부득이 나온다고 해도 선전자료만 받아가지고 조금 앉았다가 슬쩍 자리를 떠버리기를 잘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놓고 붙들어 앉힐 작정이었는데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으니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신문사에 일부러 전화를 걸고 나으라고 해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도 쑥스러워서 다음번 만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는데 다음날 점심때 이·김 두사람이 금천식당에 나타나 나를 불러냈다. 금천식당이란 신문사에 붙어 있는 구내식당으로 사원들이 음식을 먹고 전표를 써주고 나오면 월급에서 그 돈을 빼게 되어 있었다. 이것을 알고있으므로 악당들이 툭하면 이 식당에 나타나 나를 짜먹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이종명이 하는 말이 둘이서 더 생각해보았는데 우리들의 순수문학 운동을 더 강력하게 추진시키기 위해서 프로문학 공격에 앞장서 싸우고 있는 횡보 염상섭을 리더로 추대하는 것이 어떨까하고 생각하는데 상허를 만나거든 그 점도 어떻게 생각하는지 타진해 보라고 하였다.
이들과 헤어진 뒤 나는 정지용이 주간이 되어서 발간하고있는『가톨릭 청년』 사에 허보를 데리고 가야할 일이 생겼다.
허보는 그때 무명의 시인이었지만 사람이 성실하고 겸손하였다. 지용을 몹시 좋아해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는데, 지용도 어디서 보았는지 허보의 시를 읽어보고 좋더라고 하면서 『가톨릭청년』 에 실어줄터이니 시한편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허보가 와 그와 같이 명동성당에 있는 그 편집실로 갔었다. 허보는 해방전후해서 나타난 소설가 허준의 형이었다.
허보일을 끝내고 잡담을 하다가 나는 이종명·김유영이 계획하는 순수문학단체 이야기를 꺼냈다. 지용은 매우 흥미있게 내 이야기를 듣고 참가할 예정인 사람들의 이름을 묻더니 당장에 자기도 한몫 끼겠다고 쾌락하였다. 그는 휘문고보 동창관계로 상허와 아주 가까운터라 상허는 꼭 넣어야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권유해도 좋다고 하였다. 끝으로 나는 이것은 이종명개인의 제안이므로 여러사람들의 의견을 들은뒤에 결정할 일이지만 횡보를 우리단체의 리더로 추대하는 것이 어떨까하고 생각하고 있더라고 하여 슬쩍 지용의 의향을 떠보았다.『횡보…좋지. 유들유들하게 갈 싸우거든. 성미 급한 프로패들에게는 그런 전법을 써야해요. 나는 찬성인데』하고 지용은 횡보추대를 찬성하였다. 이것으로 지용은 승낙한 것이 되였고 상허도 문제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다.
그때 횡보는 조선일보학예부장을 그만두고 술 생길데가 없어 애꿎은 백화만 빨아먹고 있었다. 백화가 매일신보 학예면에 편련재곡이야기를 써 원고료가 들어오는 것을 알고 그 원고료 나오는 날에 미리 무교동 개천가에 있는 오동나무집에 와서 대령하고 앉아있었다.
5시에 원고료를 타가지고 백화와 나는 오동나무집으로 향하였는데 난데없는 춘해 방인근이 횡보와 둘이서 우물간 건너 아랫방에서 벌써 술 시작을 하고있었다.
『오다가 길에서 이 사람을 만나 데리고 들어 왔어. 먼저 시작했으니 백화, 용서하슈.』 이렇게 횡보가 백화한테 양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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