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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가라, 하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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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친구 사이라고 해도 그 우정의 깊이는 두 사람만 안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의 준석과 동수(유오성·장동건 분)의 관계도 그랬다. 폭력 조직 보스로 복귀한 준석에게 동수는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너무 커버린’ 친구에게 준석은 마지막 경고로 하와이행(行)을 권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 요청을 동수는 이렇게 거부했다. “니가 가라, 하와이.”

 폭력조직 일인자 자리를 놓고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된 운명.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둘도 알고 있었다. 흉기에 찔려 죽임을 당하는 동수의 마지막 대사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는 두 사람의 비운(悲運)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새 국무총리에 지명된 황교안 전 법무장관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친구지간이라는 사실이 화제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76년 경기고 졸)-대학교(성균관대) 동기다.(이 원내대표는 이후 서울대에 다시 입학했다.)

 대한민국 엘리트가 모이는 정치권에서 친구 또는 동문 관계는 흔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비되는 인생역정은 영화 못지않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는 대한민국 우파를 상징하는 자타공인 공안 검사였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독립운동가 집안(할아버지가 이회영 항일구국연맹 의장)의 운동권 출신 좌파 정치인이다. 고교 시절부터 스타일이 달랐다. 역시 고교 동창인 노회찬 전 의원은 “황교안은 학도호국단(유신 체제를 각인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군대식 학생 조직) 간부였고, 이종걸과 나는 유신 비판 유인물을 뿌리던 운동권 학생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은 많이 닮았다. 굽힐 줄 모르는 소신이 최대 강점이다. 황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때 핍박을 받았다. 6·25 전쟁을 ‘북한 지도부에 의한 통일 전쟁’이라는 글을 쓴 강정구 교수를 구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두 차례(2006, 2007년) 검사장 승진 명단에서 누락됐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첫 검찰 인사에서 승진했다. 이 원내대표는 4수 만에 원내대표에 당선됐을 정도로 비주류의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도 혈혈단신으로 메이저 언론사 사주 관련 의혹을 제기해 소송전에서 이길 정도로 불굴의 용기를 보여줬다.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친구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양 극단에서 더 굽히지 않을 것이다. 한쪽은 박근혜 정부 성공의 전도사 역할을 해야 하고, 다른 한쪽은 정부의 실정을 까발리고 정권 교체에 앞장서야 한다. 말릴 수 없는 싸움이자, 누구도 ‘하와이로 갈 수 없는’ 경쟁이다.

 다만 친구의 명예를 존중하는 경쟁을 해주길 기대한다. 40년 넘는 인연이 비운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두 사람은 조폭 영화 속 친구가 아니라 이미 한국 정치사(史)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