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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총독부의 학원간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그당시의 교수들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1류라고 손꼽히는 분들이였다. 1934년 교두로 취임한 윤일선은 병이학자로 국내·외에 알려진 우리나라 의학계의 태두다. 지금 생존해 각종 회합에 반드시 참석하여 후배들과 담소하는데, 학같이 마른 몸이 90세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원기가 자못 왕성하다. 그의 문하생으로 박사가 된 사람이 퍽 많다는 이야기는 앞서 한바와 같다.
다음으로 내과에 심호섭, 외과에 이용설은 다 명성 높은 의사들이었고, 젊은 교수로 약리학에 이세규, 이비인후과에 최재유, 소아과에 조동수, 정신과에 장경등은 지금까지 각과의 권위로 군림하여 온 대가들이다.
이렇게 세브란스 의전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유일한 사학으로 강강히 발전하여 나가던중 1937년에 이르러 중일전쟁이 터진뒤부터 양상이 달라졌다. 미국이 일본에 대해 경제압박을 가하자 일본은 반미태도를 노골화해 선교계에 박해를 시작하였고 학교도 심하게 감시하였다.
총독부에서는 「국어상요」 이라고해 학교에서는 반드시 일본말을 쓰라고 엄명하였는데, 세브란스 의전에는 일본말을 할줄 모르는 미국출신의 선생들이 많아 이들이 강의시간에 서툰 일본말을 쓰다가 별별 희극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1938년에는 총독부 당국이 기독교도에게 신사참배를 해야한다고 강요하고 나섰는데 지방에 있는 기독교계통의 학교에서는 이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평괴신학교에서는 교수와 학생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전원 구속되기도 했고, 광주·목포·순천등지의 여학교는 이때문에 폐쇄되고, 미국선교사들은 추방되었다.
말썽이 될줄 알았던 이학교의 신사참배문제는 어떻게 잘 타협이 되어 큰 탈없이 넘어갔지만, 또하나 문제가 생겼다. 총독부 학무국에서 대학·전문학교의 학생들에게 길게 기른 머리를 짧게 빡빡 깎으라는 삭발령을 내린 것이었다. 저희들의 말인즉, 머리를 빡빡깎아야 정신이 나고 정신무장이 된다는 것이었으나 보성전문·정희전문·세브란스전문의학생들은 이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 학교당국에서는 학생들이 말을 안들으니 어떻게 할수도 없고, 총독부 당국에서는 어떻게하는 셈이냐고 독촉이 와 학교는 몹시 난처한 지경에 빠졌었다.
그러던차에 어느날 아침 교두윤일선이 머리를 빡빡 깎고 학교에 나타났다. 이것을 본 학생들이 일제히 머리를 깍아 위기를 모면하였다. 윤일선은 어떻게 학생들에게만 머리를 깍으라고 하고 선생들은 태연하게 긴 머리를 하고 다닐수 있느냐고 해 솔선해서 삭발을 하고 나온 것이었다. 학생들은 평소에 존경하던선생이 머리를 깎고 나타나는 것을 보고 이것에 감동되어 일제히 머리를 깎은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윤일선이 참다운 교육자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이무렵부터 권노보국가라고 해 툭하면 학생을 동원시켜 산을 깍아내리는 일이나 방공호를 파는일들을 시켰다.
이때문에 강의시간을 많이 뺏어갔는데, 전문인 의학시간을 빼먹으면 안되니까, 만만한 영어와 독일어 시간을 뺏어갔다. 독일어선생과 나는 많이 놀게 되었는데, 다음 학년부터는 나甸어를 폐강시킨다고해서 없애버리고 영어시간도 시간을 줄이라고해 2,3학년의 영어시간을 처음에는 1시간씩 줄이더니 얼마안가 다 없애버리고 1학년에 2시간만 남겨 놓았다. 나甸어는 처음에는 없었던 것을 오교장이 의학의해부용어와 약학에 필요하다고 나보고 가르치라고 해 시작한것인데, 학무과에서 이것을 먼저 빼버리라고 그러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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