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로 갔던 브라질 룰라 대선 앞두고 '좌향좌'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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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연설하는 룰라 대통령. [블룸버그]

좌파 출신이면서도 우파 성향의 정책을 펴온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10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좌파 노선으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장뿐 아니라 분배도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전통적 좌파 지지세력을 재결집시켜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집권 노동자당의 잇따른 부패 스캔들로 추락한 인기를 만회하기 위한 계산도 깔려 있다. 중남미 대륙을 휩쓸고 있는 좌파 물결을 타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심산도 엿보인다.

◆ 복지 우선=룰라 대통령은 올해 대선 캠페인의 슬로건을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로 정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룰라는 좌파의 과격한 이미지를 완화하기 위해 '사랑과 평화'를 슬로건으로 택했었다.

최근 들어 룰라는 빈곤층 구호 및 중산층 지원 확대를 내세우며 전통적 지지기반 회복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재 120달러(약 12만원)인 최저 임금을 150달러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800만 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가족생계수당 등 사회구호 프로그램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조 지도자 출신으로 좌파 성향이었던 룰라는 대통령 당선 이후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우파적 정책을 표방해 미국의 지지를 받았다. 그 결과 2004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4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 바람에 좌파 지지자들에게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는 비난을 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소득이 있어야 분배도 있다"고 응수해 왔다. 그러던 그가 저소득층을 위한 분배정책을 다시 들고 나오자 선거용 민심수습책이라는 비난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 국면 전환=룰라는 지난해 말 155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통화기금(IMF) 부채를 전액 조기상환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야권은 "측근들의 부패 스캔들을 덮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고 비판했다. 집권 노동자당은 지난해 5월부터 각종 부패 스캔들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긴축재정과 고금리 덕분에 외채상환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 경제 성과=그동안 룰라는 경기 활성화와 고용 확대를 위한 인프라 확충 사업 등 성장정책을 밀어붙여 왔다. 자신이 추구해 온 실용주의 정책으로 성장과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적어도 380만 명이 새 일자리를 찾았고, 실업률은 2002년 11.5%에서 2004년 10.9%, 2005년 9.6%로 꾸준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은 2002년 1.9%에서 2004년에는 5.2%로 올라갔다.

◆ 좌파 바람=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 중남미에서 불고 있는 반미.좌파 바람에 공동 대응하자는 미국 측 제의에 룰라는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친미적 입장을 유지해 왔지만 선거를 앞두고 중남미의 좌파 바람을 무시하기는 곤란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 재선 가능성=지난해 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룰라의 지지율은 29%로 야권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주제 세하 상파울루 시장(사회민주당)의 36%에 비해 약세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룰라의 1차 투표 실패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승리를 이끄는 것은 여론 조사 결과가 아니라 경제 성적표"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은주 기자

*** 룰라 대통령은…

-1945년 브라질 베르남부쿠주(州) 농촌 출생

-1969년 노조 활동 본격 시작

-1975∼78년 브라질 철강노조 위원장

-1980년 브라질 노동자당(PT) 창당

-1986년 연방 하원의원 당선

-1989, 94, 98년 대통령 3회 도전, 모두 실패

-2002년 10월 대통령 당선

-2003년 빈곤가구 식생활비 지급 예산 삭감

-2004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5.2% 기록(1996년 이후 최고치)

-2005년 불법 선거자금 수수 등 스캔들로 탄핵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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