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조훈현·조치훈 두 전설, 12년 만에 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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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바둑 70주년을 맞아 조훈현(오른쪽)과 조치훈이 맞붙는다. 바둑 팬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대국이다. [사진 한국기원]
1980년 12월 31일 조훈현(오른쪽)과 조치훈의 첫 번째 대국. 조치훈이 승리했다.

조훈현(62)과 조치훈(59), 두 전설이 맞붙는다. 한국 현대 바둑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대국에서다.

 한국 바둑을 황금기로 이끈 두 기사가 격돌하는 올해 최고의 이벤트는 오는 7월 12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마장동 한국기원에서 펼쳐진다. 2층 대회장에서는 공개 해설과 인터뷰도 예정돼 있다.

 두 사람은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각기 활약했지만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마치 쌍두마차처럼 한국 바둑의 발전을 위해 상호 경쟁해 온 것처럼 보인다. 조훈현은 한국에서, 조치훈은 일본에서 정상에 올랐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상대가 두 사람 관계였다.

 두 기사는 1980년부터 2003년까지 비공식 대국을 포함해 11번 대결했다. 80년 연말 열린 첫 대국에서는 일본 명인 타이틀을 차지한 기념으로 귀국한 조치훈이 두 판을 모두 이겼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조훈현이 8연승을 차지하며 상대 전적에서 조치훈을 압도했다. 하지만 12년 전인 2003년 마지막으로 맞붙은 제8회 삼성화재배 8강전에선 조치훈이 불계승을 거두었다. 총 전적은 조훈현 9단이 8승3패로 크게 앞서 있지만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조훈현 9단은 아홉 살에 세계 최연소로 입단한 이후 한국 바둑 역사에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입단 1년 뒤인 63년 일본에 유학을 가 다시 입단까지 했으나 병역 문제로 72년 귀국한 후 국내 기전을 거의 독식했다. 80년대에는 전대미문의 국내 기전 전관왕(80년 9관왕, 82년 10관왕, 86년 11관왕)을 세 차례 차지했으며 89년 제1회 응창기배 세계바둑대회에서 바둑 변방국의 설움을 떨치고 우승을 일궈냈다. 최근에는 ‘2014~2015 시니어 바둑 클래식 왕중왕전’의 첫 통합 챔피언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조치훈 9단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조치훈은 여섯 살에 일본으로 건너간 뒤 일본 바둑을 평정했다. 80년 일본 최고의 타이틀인 명인을 거머쥐어 “명인을 따지 않고서는 돌아오지 않겠다”던 국내 바둑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90년대에는 기성(棋聖)·명인(名人)·본인방(本因坊) 등 3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하는 ‘대삼관(大三冠)’을 네 차례 기록했다. 조치훈도 일본판 시니어 기전인 마스터스 컵을 차지한 바 있다.

 조훈현 9단은 조치훈 9단과의 인연에 대해 “일본 유학 시절 나는 병역 문제로 귀국해야 했는데 나중에 조치훈은 군대가 면제돼서 일본에서 계속 머무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좀 그랬다”며 “지금 와서 생각하니 조치훈은 일본 바둑계에서 활약하고 나는 한국 바둑계를 위해 활동하라는 하늘의 뜻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특별 대국에 대해서는 “오랜만에 조치훈과 대국을 하게 돼서 반갑다”며 “이벤트로 열리는 대국인 만큼 승부에 상관없이 가볍게 옛날을 회상하며 바둑을 둘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현대 바둑 70년의 출발점은 45년 11월 5일이다. 조남철(1923~2006) 선생이 한국기원의 모태가 된 한성기원을 설립한 날을 현대 바둑의 기점으로 삼는다. 한국기원은 한국 바둑의 과거를 조명하고 미래를 위한 발전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한국 현대 바둑 70주년 기념사업 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한국 바둑의 70년 역사를 정리하는 책자를 만들고 홍보 영상물을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다. 6월엔 사진전, 9월엔 길거리 바둑 축제, 11월엔 바둑 대축제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현대 바둑 70주년을 기념하는 슬로건과 ‘바둑 문학상’ 작품도 공모한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기원 홈페이지(http://www.baduk.or.kr/) 참조.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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