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강성노조 선배들이 파업 중단 외치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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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 대기업 노조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울산노사발전연구원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은 울산 경제를 침몰시키는 원인”이라며 노사화합을 촉구했다. 이날 모임엔 김기봉(석유공사), 이원건(현대중공업), 이영복(현대자동차), 이연구(현대정공) 등 전직 노조위원장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민주노총은 모든 사안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파업을 선동한다”며 “노동운동가가 정치에 발을 담그면 노동운동은 변질되고 국가와 기업은 망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1980~90년대 파업투쟁을 이끌었던 강성노조위원장들이다. 이원건 전 위원장은 ‘128일 파업’과 ‘골리앗 투쟁’을 주도했다 1년6개월간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노동계 대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파업 중단을 요구하는 이유는 현재 위기상황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제일 잘사는 도시인 울산은 올 1분기 광공업생산이 지난해보다 줄었다. 고용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백화점·대형마트·소매점 판매도 부진하다. 음식점·술집들도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지난해 1조923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서도 크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대차도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있다. 중국 수출 덕에 호황을 누렸던 석유화학업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늪에 빠졌다. 당연히 신규 고용은 줄이고 기존 직원을 희망퇴직 형태로 내보내는 기업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분규와 파업까지 겹치면 회사건 노조건 공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노조는 여전히 회사 생존을 위해 협조하기는커녕 무리한 요구를 일삼고 있다. 현대차노조는 ‘국내와 해외생산량을 노사 간 합의해 결정한다’는 조항을 올해 임단협에 넣는다고 한다. 현대중공업도 구조 조정을 둘러싸고 노사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노조가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나 몰라라 하고 자기 몫만 챙길 경우 그 결과는 파국이다. 울산에선 현대차 중국 4·5공장이 완공되면 울산공장을 폐쇄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6년째 울산공장을 방문하지 않은 이유도 노조의 잦은 파업과 무리한 요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미 공장 문을 닫고 중국·인도 등지로 떠나는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현실화되고 있다. 생산성에 비해 미국 등 선진국 노동자보다 더 높은 임금을 줘야 하는데 어떤 기업이 한국에 공장을 지으려 하겠는가.

 현재 위기가 노조만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현재의 회사 번영에 공헌했듯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노조가 회사와 머리를 맞대고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균 연봉 9000만원이 넘는 노조의 파업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지역 영세상인들이다. 대기업 노조는 이제 공익적 관점에서 주변을 돌아봐야 할 때가 됐다. 노조가 기득권에 매몰돼 공존의 길을 외면하면 울산 경제가 자동차산업의 몰락으로 파산한 미국 디트로이트시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