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반 총장 방북 무산에도 대화는 계속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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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내줬던 개성공단 방문 허가를 하루 전에 전격 취소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북한의 이 같은 예측 불가한 돌발 행동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저버린 예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의 중재자인 유엔 사무총장과의 약속을 일언반구 해명도 없이 철회 통보한 것은 외교적 결례를 넘어 스스로 국제사회의 일원이기를 거부한 행동이다.

 한술 더 떠 북한 국방위원회는 이날 “우리의 핵 타격 수단이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면서 “함부로 도전하지 말라”는 협박 성명까지 내놨다. 반 총장의 방북으로 꽉 막힌 남북 관계에 다소나마 바람길이 트이길 바랐던 잠깐의 기대가 거품처럼 꺼지고 만 것이다.

 당초 북한이 반 총장의 방북을 허가한 것 자체가 의외였다. 북한으로선 기대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방문한다고 해서 당장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제재 수위가 낮아지기 어렵고, 남측과의 대화 압력이나 받을 게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김정은 체제가 4년 차에 접어들었음에도 내세울 만한 성과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아무리 화내고 다그쳐도 구조적으로 개선의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 남한이 배출한 세계적 인물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북한이 유엔과의 대화마저 거부함에 따라 한·미와의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오히려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의 도발 위험만 더 커진 상황이다. 이는 반 총장뿐 아니라 우리에게 북 정권에 대한 섣부른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지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환상이나 감성적인 이벤트성 접근은 거둬야 한다. 지극히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 북한을 바라보지 않으면 얻을 게 없다. 한두 번이 아닌 만큼 이번 일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꾸준하게 대화를 제의하고 협력을 강화하면서 북한을 고립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북한에도 이득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북한과 마주한 우리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