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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 거부 사태 번질라" 다급한 불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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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일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 영훈고등학교 앞에서 전교조 교사들 이 '신입생 모집 중지 사학재단 규탄 기자회견'을 열려 하자 학교 측 관계자들이 이를 저지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전 제주도 5개 사립고의 신입생 배정 거부 움직임을 보고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이건 참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싸늘한 표정이었다는 게 참모의 전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3일 사학재단을 소유한 종교계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최소한 학생 모집을 거부하는 그런 불행한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신신당부했었다.

노 대통령은 바로 이병완 비서실장에게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한 시간 동안 회의가 열렸다. 이 실장과 김병준 정책실장, 민정.시민사회.홍보.사회정책 수석, 국정상황실장, 교육문화비서관,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 김만수 대변인은 "처음부터 단호한 분위기였다. 유연한 제안은 단 한 명도 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헌법 수호 차원의 강력 대응' '사학 비리 전면 조사' 등의 초강경 대응 방안을 쏟아냈다. 특히 사학 비리에는 검찰 등 정부의 가용 능력을 모두 쏟아부어 메스를 대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대책회의의 한 참석자는 "이 사안을 해당 고교의 예비소집일인 9일 이전까지 확실히 진화하지 못하면 산불이 번지듯 다른 곳의 사학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이라고 전했다.

이번 대책은 두 번째 배수진의 성격이 있다. 청와대는 이미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에 따른 열린우리당 내홍 사태로 레임덕 현상을 보이는 게 아니냐는 시선을 받고 있다. 여기에 최대 정치 쟁점인 '사학법 개정' 논란에서까지 밀리면 진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핵심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사학협회의 고위 관계자들이 제주도에 내려가 사태를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는 첩보가 대책회의에서 거론됐다"고 했다. 그는 또 "그간 사학법 철회 장외투쟁을 벌여온 한나라당이 물밑에서 가세할 경우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어 가장 신속하게 진화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강공엔 신입생 배정 거부 사태가 사학의 돌이킬 수 없는 악수이며 여론의 균형이 급격하게 깨질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사학이 '전교조의 학교 장악'을 홍보할 때 관망하던 여론이 '학생을 볼모로 잡은 행동'에 대해선 반감으로 돌아설 것이란 얘기다. 사학 측이 무리수 두길 기다렸다가 받아치기 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나라당은 이계진 대변인이 "이럴 때 쓰라고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며 "정부.여당이 날치기까지 하면서 헌법 정신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원인을 제공하고는 이제 와서 법질서 수호를 운운하며 국민을 협박하는 태도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엄호성 전략기획본부장은 "정권이 죽는 길로 가고 있다. 군사정권 때 반대세력의 저항을 까분다며 강경하게 대처했지만 결과는 제 무덤을 파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사학 비리를 판다고 대단한 게 나올 것 같으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11일의 수원집회 등 계획된 장외투쟁을 계속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박근혜 대표는 이날 "사학법을 재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사학의 학생배정 거부나 정부의 사학 비리 조사에 대해선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학생 배정 거부에 대해 이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거기에 동조한다, 안 한다를 말할 수 없다"며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사학법 재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최훈.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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