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정성 장엄등 … 그 마음 그대로 부처이시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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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은 나로부터의 변화를 통해 가족과 사회, 지구를 변화시키는 한마음의 원리를 삶 속에서 실천해 가는 생활 참선 수행 도량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생명체들이 공생하며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생명의 나무로 표현했다. [사진 한마음선원]

올해는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지 2559년이 되는 해다. 올해도 불교의 가장 큰 행사인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연등축제가 열렸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누리에 전하는 것이 연등축제를 개최하는 목적이다. 갖가지 다채로운 행사들이 펼쳐진 올해 연등축제는 지난 15일에 시작돼 17일 광화문 광장에서 축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연등행렬로 마무리됐다.

신도·청년·학생·어린이회 등
연등 수백 개 함께 만들어 참가
풍물패 거리공연 등도 선봬

본래 밝은 한마음을 형상화시킨 어린이회의 광명등.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로 인해 다른 해보다 일찍 행렬이 출발한 탓에 종로 일대의 밤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장엄등 행렬을 늦게까지 즐기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가두에서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으며 환호하는 외국인들의 숫자는 어느 해보다 많았다. 그 모습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선정된 연등축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축제로 알려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부처님오신날은 세상 만물에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이 깃들어 있어 일체 생명이 그 마음을 밝히면 본래 부처임을 알려주시기 위해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음을 경축하는 날이다. 연등축제는 이런 날을 봉축하는 행사인 만큼 모든 불교인이 참여해 각 사찰에서는 장엄등을 만들기도 하고 개인이 들고 갈 행렬등을 만들기도 한다.

장엄등 채색을 하는 한 청년의 모습.

 한마음선원도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지면 도량 내외에서 장엄등 제작을 위해 어느 곳보다 더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해마다 새로운 장엄등과 행렬등을 기획하는 한마음선원은 규모도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설치 기술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전문화돼 그 움직임이 자연스러우며 채색은 더욱 세련되고 정교해져 보는 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새로운 등이 기획이 되면 한마음선원 안양 본원에서는 신도회·청년회·학생회·어린이회 모두가 각각 중심이 돼 100여일 간의 장엄등 불사에 들어간다. 남녀 신도들은 신행회별로 수백 개의 행렬등을 만들고 갖가지 울력에 내 일 남의 일을 나누지 않고 동참한다. 거대한 장엄등은 청년들의 몫이다. 청년들이 만드는 장엄등은 한마음선원을 세운 대행 스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등을 보는 이와 만드는 이들의 마음이 본래 밝은 한마음임을 알고 나와 가족, 사회와 지구가 공생의 장으로 밝아질 수 있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청년들은 장엄등 제작 외에도 연희단과 풍물패에 참가해 연등축제 전야제에서부터 수준 높은 공연을 펼쳐 보임으로써 사람들에게 이 시대 한국 불교의 역동성과 진취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학생회에서는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시험기간과 맞물리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연습을 거쳐 종로거리에서 다채로운 공연을 통해 불교를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올해는 처음으로 연등행렬에 합류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들고 가는 반딧불이등은 모든 생명에 마음의 불씨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마음선원 어린이들의 귀여운 율동을 곁들인 연등 행렬 또한 연등축제의 볼거리로 인기를 누린다. 한국 불교의 미래로서 어린 새싹의 몫을 톡톡히 한다.

마음의 불씨를 전하는 학생회의 반딧불이등.

 한마음선원의 이 같은 준비와 활동에서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전문적인 일들이 외부에 의지하지 않고 모두 온전히 신도들의 손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모든 연희단들의 연희복은 늘 업체에 주문해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제는 해마다 어머니들이 손수 천을 떠서 일일이 재단해 만든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손길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렇게 모든 신도들이 한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초파일을 준비하는 모습은 안양의 본원뿐만 아니라 15개 지역에 분포돼 있는 지원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이렇듯 불법 공부와 생활을 따로 나누지 않고 내 앞에 닥친 모든 것을 자기 수행의 한 방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대행 스님의 가르침 덕이다. 대행 스님은 산사에서의 참선 수행을 통해 전해오던 우리 불교의 전통을 현대인들의 바쁜 생활 속에서도 행할 수 있도록 확대시켰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참마음이 인도하는 뜻을 지혜롭게 알아차리고 생활 속의 수행을 조화롭게 실천하며 걸림 없이 푸르게 살기를 바라는 스님의 발원은 등을 만드는 사람들과 등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항상 밝게 빛나고 있다.

“마음의 향기는 모든 생명이 다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밝혀 쓰는 대장부와 그것을 모른 채 어둠속을 헤매는 미혹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불교를 배운다고 하는 것은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고 나를 밝히는 것은 나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성품 중의 불성을 깨달으면 중생이 바로 부처인 것입니다.”(대행 스님 법어 중에서)

지난 100일간 백일정진의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과 정성이 모여 만들어져 장엄한 빛을 발하는 장엄등, 참신하고 자유로운 주제로 늘 새롭게 만들어지는 행렬등, 아름다운 빛의 행렬을 이루는 수천 개의 등들은 모두가 함께 밝아지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열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부처님 재세(在世) 시에 가난한 여인이 밝힌 등불 하나가 비바람이 쳐도 꺼지지 않고 홀로 빛나던 그 정성과 마음을 기림으로써 시작된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빛이 불기 2559년 오늘에 이르러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가는 연등축제로 빛나고 있다.

김승수 객원기자 sng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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