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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美 공동체 마을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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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버지니아주 남서부 루이사의 좁은 숲 길을 한참 달린 끝에 도착한 트윈 옥스 마을. 36년이나 된 미국의 전형적인 공동체 마을이다.

입구에 세워진 픽업 트럭들만 없다면 19세기 미국 농촌 풍경이다. 시커멓게 낡은 예닐곱 채의 커다란 목조주택 앞마당엔 하얀 빨래들이 가득 널려 있다. 그 사이로 맨발의 아이들이 뛰놀고, 다른 한 쪽엔 장작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마을 앞 딸기밭에서 쟁기질을 하던 팩서스 스타(47)가 달려 나와 "오늘은 내가 마을의 대외활동 담당"이라면서 흙묻은 손을 내민다.

그는 "아침에 마을 공동 옷장에서 아무거나 골라 걸쳤더니 오늘은 히피가 돼버렸다"며 웃는다. 이곳에선 겉옷은 물론 속옷.양말.신발까지 공동으로 소유.관리한다.

미국의 공동체 마을은 영화 '목격자'의 무대로 유명한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의 아미시 마을처럼 종교적 이유에서 출발했다.

1960년대 히피 문화와 반전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물질 만능주의와 자본주의, 개인주의에 대한 반성과 대안 문명을 찾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공동체 마을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70년대 들어 환경보호주의자.예술인.명상가.은둔주의자들이 공동체 생활에 합류했다. 지금은 도시에서도 20~30가구씩 각자 자기 집을 갖고 한 지역에 모여 살되, 식사.여가활동만 함께 하는 동호인 마을(Co-Housing)이 활성화하고 있다. 특정 지역의 상공업자들끼리 은행 계좌와 경제활동을 공유하는 '집단 동업'의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총 1백2명(아이들은 12명)이 모여 사는 트윈 옥스 마을의 3대 원칙은 공동생산.공동소유, 상호협력, 평등주의. 연령.성별.종교.인종에 관계없이 주민이 될 수 있지만 3주간의 방문자 생활, 6개월의 수습 생활을 거친 뒤 인터뷰와 주민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정식으로 주민이 되면 자신의 침실과 가재도구가 주어지고 적게나마 용돈도 받는다. 자녀가 있으면 공.사립 가리지 않고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교육비를 마을에서 모두 지원한다. 이 마을의 주수입원은 그물 침대 짜기. 연 매출이 1백50만달러 정도다.

일거리는 공장.농사.청소.세탁.조리.정비.행정 등 1백여가지로 시시콜콜하게 나눠져 있다. 한 주민이 한가지 일만 하지 않고 하루에 서너 가지씩 돌아가면서 맡도록 시간표가 짜여 있다. 주당 의무 노동시간은 42시간.

규율을 상습적으로 어기면 주민회의를 열어 근신.경고 등의 처벌을 한다. 폭력을 휘두른 사람은 무조건 추방한다.

라디오.인터넷.비디오는 허용되지만 텔레비전 시청은 최초 설립자의 뜻에 따라 여전히 금지돼 있다.

키넌 다코다(43)는 조지 메이슨대 졸업 후 20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 "물론 여기도 1백% 만족은 없고 우리들이 항상 잘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바깥 사회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미워할 이유가 훨씬 적다"고 말했다.

루이사(버지니아주)=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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