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시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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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짜」세상이라더니, 이번엔「가짜 선수」까지 등장해 냉소와 고소를 함께 자아내고 있다. 명색이「세계타이틀 매치」인데, 챔피언에 도전한 외국선수가 가짜였다.
지난 7일 정주에서 열렸던 대회는 그러니까「세기의 사기극」이 됐다.
이 지방에서 처음 열린 세계타이틀매치를 구경하려고 모인 관객들은 물론, 전국에 중계된 TV화면을 통해 시청자들의 흥분을 자아낸 게임이 사기 쇼였으니 기가 막힐 뿐이다.
문제의 선수는 꽃다발을 받고 콜롬비아 국가가 연주될 때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는게 화면에 비쳤었다.
그 선수가 세계 랭킹8위로 정식 도전할「카스트로」가 아니고 무명 떠돌이 복서「플로레스」였다는게 처음 밝혀진 것은 게임 뒤 콜롬비아의 유력지 엘 에스펙타도르의 포로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사실은 벌써 게임 하루 전에 우리 신문에도 이 선수의 여권에 기재된 이름이「가스트로」가 아니라는데 대한 의문점이 제기된바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열렸다. 그러니까 그 의문을 확인할 책임이 있는 한국권투의 (KBC) 는 그간 돌아앉아 수인 계산만 하고있었다는 얘기다.
가짜선수「플로레스」는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세계 타이틀 매치를 치르러 가는 것을 매니저「알만도·토레스」로부터 들었다고 지금 실토했다.
콜롬비아의 신문은 이 사기극의 장본인이 바로「토레스」라고 지적했다. 그를「비열한 장사꾼」이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사기꾼에 놀아나 함께 사기극을 벌여온 우리권투 계에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벌써 82년에 태국의 무명복서 3명이 다른 선수의 이름을 빌어 한국에 원정해 모두 석연 찮게 KO패한 사실도 있었다.
그 사실은 일목의 권투 전문지 복싱 매거진의 목로로 밝혀졌었다.
남이 밝혀주지 않았더라면 그때도 한국 권투 팬은 가짜들의 춤에 계속 속은 줄도 모르고 있을 판이었다.
가짜선수들을 초청한 국내의 당사자들은 언제나 『전혀 몰랐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은 사람이 책임 없는 말을 할 수는 없다는 게 분명하다.
국민을 우롱하는 사기를 벌여놓고 책임을 지지 않고 모른 체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프로 스포츠도 스포츠인 만큼 속임수나 거짓은 용납될 수 없다. 세계적 게임을 운영할 스포츠기구들의 무능과 독선도 빨리 시정돼야겠다.
하지만 문제는「가짜 카스트로」에 그치진 않는다.「가짜 이강우」이후 우리를 우롱해온 갖가지 가짜들을 몰아낼 다짐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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