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의 포기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은 그들이 가장 열렬히 지지하고 헌신해온 것처럼 주장해온 자유무역의 깃발을 내리려고 하고 있다. 그대신 그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비난해온 보호주의의 껍질속으로 후퇴를 준비하고있다.
GATT체제 이래의 평화로운 무역질서를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세계무역에서 그나마 최대의 자유시장으로 남아 무역신장과 호혜적 번영에 기여해온 것으로 자부하던 미국은 이제 선거를 앞두고 경쟁력 없고 사양화되고 있는 국내업계의 압력을 이유로 자유시장의 문을 닫으려 하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변모는 물론 1천억달러에 이를 연간 무역적자나 일본상품의 대량수입 등으로 미국의 산업전반에 걸친 심각한 피해의식의 누적이 초래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자유무역포기와 보호주의 선회는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으로 미루어 범세계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한다. 비록 이같은 자국시장보호가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형 출초국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시장이 편중된 우리를 포함한 개발도상국들에 집중적인 파급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차원에서 보아 미국은 선진국간의 교역에 비해 개도국과의 교역확대가 세계적인 경제안정과 발전에 필수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비교 열위를 인정하고 신규투자를 포기한지 오래된 사양산업들조차 다시금 보호하기 시작한다면 그동안 시장을 대체해온 개도국들은 설 땅이 없어지고 개도국이라는 방대한 자유상품시장 또한 축소됨으로써 미국의 수출도 제약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우기 개도국들의 채무중압이 거의 대부분 선진국과의 교역에서 비롯되었고 그의 원활한 상환실현이 최대의 관심사인 점에 비추어 개도국들을 상대로 한 시장폐쇄는 국제금융의 파탄과 직결될 우려조차 없지 않다.
특히 80년대들어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대미무역에서 마찰을 빚어온 우리로서는 지금도 컬러TV의 터무니없는 덤핑판정 외에도 철강·섬유류 등 광범한 분야에서 새로운 수입규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미국의 이같은 새로운 보호주의화는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미 의회에 계류중인 통상관계법안들은 일반특혜관세제 개정안을 비롯하여 반덤핑 및 상계관세의 적용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무역구제법안, 철강제품 수입을 국내생산의 15%이내로 규제하기 위한 철강공정무역법안 등을 포함하고 있어 우리의 대미수출에 지대한 영향을 줄수 있는 법안들이다.
이같은 광범위한 무역규제법안이 없는 현재도 이미 컬러TV가 덤핑 제소되어있고 철강제품은 미국업계가 국내수요의 15%이내로 수입물량을 제한토록 요청, 이달말께 최종결정을 앞두고 있다. 냉연강판과 형강 제품도 상계관세로 제소되어 있으며 한국산 피아노도 추가 제소할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통상규제법안의 일괄처리는 온당하지 않으며 특히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한미무역에 크나큰 타격을 줄수 있음을 유의해야할 것이다.
특히 미국은 최근 덤핑제소와 상계관세를 남용하고있고 충분한 근거 없이 미국정부 재량으로 운용하고 있음에 비추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국제적인 통일기준이 만들어져야할 것이다.
덤핑제소를 다룰 독립적 국제적 조사기구를 만들어 각국 정부의 재량권을 줄이고 공정성을 높여야할 것으로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