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때 대구 2군사령부에서도 군 출동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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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기석 전 삼성물산 회장이 17일 경기도 용인시 자택에서 5·16을 회상했다. 당시 그는 박정희 소장이 부사령관이던 대구 2군 사령부의 공병참모로 4개 대대를 이끌고 대구 공공기관들을 장악했다. [최승식 기자]

“5.16 때 서울뿐 아니라, 대구에서도 군(軍) 출동이 있었습니다.”

초대 건설부 장관과 한국도로공사 사장, 삼성물산 회장(건설담당) 등을 지낸 박기석 예비역 장군(87·준장)은 5·16에 참여한 5기 출신 중 유일한 생존자로 알려졌다. 기자가 54주년을 맞은 5·16에 대해 17일 물었을 때, 박 전 회장은 한강 이남 후방지역 전체를 관할했던 제2군 사령부에서도 거사 작전이 전개됐음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박정희 소장이 부사령관으로 있던 대구 2군사령부의 공병참모(대령)였다. 5월 16일 새벽 3시20분 박기석 대령은 휘하 4개 공병대대를 이끌고 대구에 있는 경상북도 경찰국과 방송국·전화국·우체국 등 주요 기관들을 장악했다. 또 2군 사령관인 최경록 장군(중장)을 찾아가 거사의 불가피성과 취지를 설명했다. 최 사령관은 박 대령의 말에 “군인으로서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할 것이나, 어렵게 된 나라 형편을 바로잡기 위해 거사를 한 박 대령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소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박 전 회장은 “2군 예하에 대구·부산·대전·광주·안동에 5개 예비사단이 있었다. 박정희 소장의 직속 상관이었던 최 사령관이 그때 딴생각을 했다면 거사에 지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김재춘·박치옥·문재준 등은 박 전 회장과 함께 5·16에 참여했던 육사 5기생들이다. 박 전 회장은 "당시 실병력을 움직인 건 대부분 5기생들이었다”고 말했다. 김재춘 대령(후에 중앙정보부장)은 당시 첫 번째 지휘소였던 6관구 상황실에서 출동병력을 지휘했다. 문재준 6군단 포병단장은 포병단 1300명을 이끌고 육군본부 연병장에 진주했다. 당시 최초로 서울에 진입한 거사 부대였다. 박치옥 공수특전단장은 공수부대원들을 이끌고 중앙청·국회의사당·방송사·통신기관 등을 점령했다.

 이중 박치옥·문재준 단장은 61년 7월 ‘장도영 최고회의 의장의 반혁명 음모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듬해 3월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2개월 뒤 형 집행면제로 풀려났다. 박 전 회장도 5·16 군사정부의 초대 건설부 장관을 한 달 반 가량 지낸 뒤 경남 김해의 공병학교 교장(준장)으로 군에 복귀했다. 65년 예편해 정부와 공기업 수장을 지낸 뒤 삼성종합건설 사장으로 영입됐다. 군(軍)·관(官)·민(民) 세 분야에서 성취를 이뤘다.

 그에게 5·16은 자부심인 동시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한국 산업화의 굳건한 토대가 됐다는 점은 자부심이지만, 후세에 의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쉬움이라는 것이다. 해마다 이어져 왔던 5·16 민족상 시상식이 올해부터 중단된 것도 그의 아쉬움을 더한다. 박 전 회장은 16일 오전 혼자서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는 조화 하나 없이 썰렁했다. 정오가 될 때까지 한 시간 가량 머물렀지만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5·16 기념일에 박 대통령 묘소에 조화 하나 없기는 올해가 처음인 것같다”라며 “누워 계시는 대통령 내외분께 깊히 사과드리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글=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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