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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개헌론 솔솔 … 무엇이 쟁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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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개헌 논의의 필요성에 입을 모은 참석자들. 왼쪽부터 박명림 교수, 이병석 의원, 강치원 교수, 김부겸 의원,
정종섭 교수. 오종택 기자

새해 화두는 단연 개헌이다. 이해찬 총리는 새해 벽두 내각제의 문까지 열었다. 그 뒤로 각 정파와 학계.시민단체가 잇따라 개헌 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개헌에는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북한을 어떻게 보고 헌법에 반영할 것인지 등 아직도 시각을 좁히기 어려워 보이는 대목도 적지 않다. 정치권과 학계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바람직한 개헌 방향을 들어 봤다.

▶강치원(사회)=개헌 논의가 연초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이해찬 총리가 내각제 개헌론으로 불을 지피자 각 당에서 개헌론을 들고 나온다. 언제부터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전개돼야 할지 견해를 말씀해 달라.

▶이병석=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70%에 가까운 국민이 개헌 논의 시기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경제 살리기 등 시급한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올해 지방선거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김부겸=동감한다. 가장 큰 부분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의 양대 선거를 합치시켜 권력의 불일치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정치권이 나서기 이전에 전문가들 사이의 토론은 연초부터도 가능하다고 본다.

▶정종섭=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나아가면서 국정운영의 프레임이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인 그랜드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은 개헌적인 요소가 개입돼 있기 때문에 헌법을 부분적으로 고쳐야 할 필요성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이미 실기했다고 생각한다. 2005년 초에는 준비위가 출범했어야 한다. 지금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면 대선과 맞물리게 된다. 개헌이 대선 이슈가 되면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변질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지금 개헌 논의를 하려면 차차기 정부를 위한 개헌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1세기 대한민국의 그랜드 디자인에 어울리는 헌법이 나올 수 없다.

▶사회=지금 개헌을 논의하는 것이 차기 정부를 위한 것인지 차차기 정부를 위한 것인지는 토론의 여지가 있다. 이명박 시장도 차차기를 위한 개헌을 주장한 바 있다.

▶박명림=차차기를 위한 개헌을 준비하다 보면 차기 정권에서 개헌이 된다. 따라서 차기 정부에 대한 개헌이 돼야 한다. 이번 정부에서 개헌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음 대선과 총선 시점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대선과 총선을 함께 실시하려면 이번 정권이 개헌의 적기다.

▶이병석=차기 정부 구성을 전제로 한 개헌이 돼야 한다. 전문가 집단의 논의가 올 1월 시작돼 밀도를 높여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한다면 시간은 부족하지 않다. 과거 아홉 차례 헌법 개정은 정략적 동기를 배경으로 깔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 집단, 비정부기구(NGO) 등과 큰 틀에서 논의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김부겸=개헌 논의가 갖는 폭발성을 감안하면 차차기를 위한 개헌 논의를 지금 시작하는 것은 너무 많은 비용을 지급하는 셈이다. 전문가 집단의 토론이 올해에 시작된다고 하면 차기 정부를 위한 개헌도 문제 없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정치권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명박 시장이 차차기를 위한 개헌을 들고 나오는 것은 내 떡은 놔두고 다음 떡부터 바꾸라는 뜻 아닌가. 자신의 이해관계로 개헌을 봐서는 안 된다.

▶사회=개헌에서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이 권력구조와 영토조항이다. 먼저 권력구조에 대한 견해를 밝혀 달라.

▶김부겸=우선 개헌 논의 초점이 현실 권력구조의 문제로 상당 부분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국민은 개헌 논의 자체를 기본적으로 '너희들만의 리그'로 보는 경향이 있다. 권력 나눠 먹기로 비춰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4년 중임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우리 같은 다이내믹한 사회가 8년의 정권을 감당하기는 여러 모로 무리가 있다고 본다. 정권을 잡는 쪽의 입장에서도 첫 4년은 다음 4년을 준비하는 데 할애할 테고 나머지 4년은 통제 안 되는, 자의적으로 통치하는 4년이 될 것이다. 정종섭 교수가 제안한 내각제 아이디어가 지혜롭다고 본다. 또 하나 우리 사회가 몇 차례 경험했던 대통령 권력과 의회권력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통령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병석=권력구조 개정에만 매달려서는 국민에게 헌법 개정의 취지와 진정성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싶다. 정부통령제를 기본으로 4년 중임이 돼야 한다. 50~60년 동안 대통령 중심제가 계속돼 왔다. 중간 중간에 내각제 주장이 있었지만 내각제는 우리 현실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때마다 입증돼 왔다. 지역 갈등 문제와 대선 승복 문제 등을 풀기 위해서는 결선 투표제가 필요하다.

▶박명림=대통령 책임제가 돼야 한다. 정당의 사회 대표 기능이 이토록 무능한 사회에서 정당정치의 발전을 전제로 하는 내각책임제를 할 수는 없다.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 선거와 의회선거를 함께 해야 한다.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비례대표 선거를 임기 중간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권의 중간평가 기능도 할 수 있다. 또 의원 수를 늘리고 비례대표도 지역대표의 절반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정당정치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삼권분립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 감시 기능을 갖는 감사원을 독립하는 등의 4권 분립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인 견제의 필요성도 있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호주제 폐지 같은 정부 정책이 사법부의 결정에 의해 이뤄지는 것은 세계적으로 굉장히 드문 사례다. 이런 점에서 4권 분립이 필요하다.

▶정종섭=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 시절 현대사회는 행정부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행정국가론이 등장했다. 이후 의회 회의론이 나온 것이다. 이때부터 '의원내각제야말로 한국에서는 절대 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2공화국을 봤지 않느냐'고 하는 주장은 권력의 분점을 수용하지 않기 위해 하는 말일 뿐이다. 정당 발전을 위해서라도 내각제를 해야 한다. 의회를 정상화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인데 이를 위해서는 내각제를 해야 한다.

▶김부겸=내각제로 가자는 것은 절대적인 권력은 인정될 수 없다는 토대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가 이미 51대 49의 구도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분산하는가의 문제다.

▶이병석=대통령 중심제로 세계 경제 11대국에 오를 만큼 발전해 왔다. 대통령 권력을 축소하는 문제는 감사원의 기능을 강화해 국회로 이관하는 등의 방식으로 가능하다. 남북관계를 고려해서라도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가 가장 적절하다.

▶사회=영토를 규정한 헌법 제3조와 통일을 언급한 제4조가 상충한다는 견해가 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영토조항을 거론하기도 했는데.

▶이병석=3조와 4조가 충돌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풀기 위해 3항은 선언적인 의미로 놔두되 부칙 등을 통해 현실성을 가미할 수 있지 않을까 본다.

▶김부겸=영토조항이 갖는 민감성을 고려한다 해도 북한을 정치적인 실체로 인정한다는 점은 반영돼야 한다.

▶박명림=3조는 국민적 합의 때문에, 4조는 그 목적성 때문에 폐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3조를 두 개로 나눠야 한다. 영토 규정은 그대로 두되 통일 전 잠정적 현실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정종섭=3조와 4조는 충돌이 안 된다. 3조는 규범의 문제이고, 4번은 사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토조항은 복잡하고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간단하게 폐지하라 말라 할 대상이 아니다.

▶사회=누가 개헌 논의의 주체가 돼야 하는가도 관심거리다.

▶정종섭=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하는 것이 맞다. 중요한 것은 전문가들로 헌법조사단을 구성하는 것이다. 전문가 연구단이 최소한 1년 이상 가동돼야 한다. 헌법학자와 정치학자.경제학자 등이 조사도 하고 외국 사례 관찰도 해야 한다. 최소한 1년 정도 과정을 거쳐 결과를 축적해야 한다.

▶박명림=시민사회와 의회.전문가 집단이 동시에 참여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전문가 집단에는 헌법학자와 인문학자.철학자.역사학자.문화학자.사회과학자가 포함돼야 한다. 헌법 디자인은 정권 디자인이 아니라 미래 디자인이다.

▶김부겸=국회가 주도하되 정치적인 영향력이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 국회의장이 사회적 논의기구를 먼저 위촉했으면 한다. 이 기구에서 텃밭을 가꿔 놓고 갈무리하는 단계에서 국회 특위가 가동됐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진정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국민의 동의도 나올 수 있다.

정리=전진배 기자 <allonsy@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참석자 (가나다순)

김부겸 의원(열린우리당)
박명림 교수(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이병석 의원(한나라당)
정종섭 교수(서울대 법학과)
강치원 교수(강원대 사학과·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