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추상화를 닮은 귀신도 모르는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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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1국 하이라이트>
○ . 이창호 9단(한국) ● . 후야오위 8단(중국)

바둑의 대부분은 전쟁을 닮았고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는 바둑은 이름하여'귀신도 모르는 바둑'이다. 확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감과 상상력이 판을 지배한다. 그리하여 바둑이라기보다는 한 폭의 추상화에 가깝다.

장면1=중국의 강자 후야오위(胡耀宇) 8단이 흑을 들고 대세력 포진을 펼치고 있다. 귀의 실리를 아낌없이 내주면서 중앙과 변을 확장하고 있다 (전투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런 포진을 따라하지 말기를 권한다. 어느 순간 세력은 허공으로 변하고 손엔 지푸라기만 남는다.).

이창호는 과거 다케미야(武宮正樹)의 우주류를 가장 완벽하게 깨뜨린 기사다. 이런 이창호를 상대로 세력전법을 들고나온 후야오위의 배짱이 두둑해 보인다. 백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장면2=이창호 9단은 28, 30 다음 32로 둔다. 왔다갔다 한다. 28은 뭐고 30은 뭘까. 여기서 손을 뺀 32는 또 뭘까. 검토실의 프로들이 해설을 중단하고 망연히 판을 본다. 귀신도 모르는 바둑이다. 피카소의 추상화처럼 알듯 알듯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림이다.

굳이 설명을 듣는다면 28은 A의 끝내기를 남긴 수고 30은 공격의 방향을 물은 수다. 34까지의 이 모든 수들은 선악을 논할 수 없다. 박영훈 9단의 얘기인데 다만 흑35의 공격은 오직 이 한 수의 곳이라고 한다.

참고도=34로는 백1이 정수에 가까울 것이라고 박영훈 9단은 말한다. 그러나 이때는 흑도 2로 집을 크게 지어버릴지 모른다. 이 9단은 이 수가 싫어 싸움을 선택한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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