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없인 진정한 찬성없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대한성서긍회의 일로 미국에 도착했던 며칠 후에 마침 민주당전당대회가 열려서 거기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게되었다. 「쿠오모」지사와「제시·잭슨」 「에드워드· 캐네디」 등의 연설에서 현직 대통령에 대하여 『레이건은 할리우드로 돌아가라』 는 식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판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우리같으면 「국가원수모독죄」 에라도 걸릴듯한데 표면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미국의 정치인들은 그러한 모진 비판과 비난을 「국론」 으로 승화시켜 나가고있다. 이것은 이 사회의 여론과 상식이 그것을 용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정치의 묘미가 있다고들한다.

<비판, 정부에 도움>
이러한 모진 비판과 비난은 사실 「레이건」 정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권밖의 미국민들의 욕구와 불만을 이런식으로 카타르시스 (정화) 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1백여년간 국제관계를 맺어왔고 해방이후 특히 최근에 와서는 우리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다지고 있는 미국의 이러한 여론형성 과정의 단면을 보면서 그동안 많은 정치가 학자 관료 기술자들이 미국을 「선진국 모델」 의 첫째로 손꼽기에 주저하지 않았으면서도 미국문화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어쩌면 오늘날 미국형성의 본질적인 측면이라 할 이러한 점들은 외면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그동안 많은 유학생을 파견하여 미국문화의 현상적인 측면인 기술과 기능등을 도입하는데는 급급했으나 그 저변에 흐르는 문화의 본질을 파악하는데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자본주의는 이식되고 있으나 그 저변에 정직과 신의, 근검과 절제의 퓨리턴 문화는 외면되고, 행정의 조직과 기능은 도입되었으나 그 합리성이나 친절·봉사의 정신적 바탕은 결여되었으며, 선거와 삼권분립등 민주주의의 제도와 형식은 이식되었으나 주권재민의 정신구현과 지방자치제와 자유언론을 통한 여론의 형성과정에는 소홀했다.

<반복된 찬반 거쳐>
여론의 형성은 민주주의 시항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이것을 통해서 국민의 의사를 파악하고 국민주권론도 행사할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의 형성에는 찬ㆍ반ㆍ중도등 여러 의견들이 있어서 그것들이 대화와 갈등을 통해 통합된다. 한 기관안에서 대화와 갈등의 여론형성과정을 완벽하게 거쳤다 하더라도 그 주장의 적용과 시행범위에 따라서는 더 넓은 사회의 여론수렴과정을 거치는 것이 온당하다. 국가적인 관심사일 수록 국민의 대표기관의 염격하고 공정한 논의를 거쳐야 하는것은 이때문이다.
반대를 포함한 비판적 의견이 이때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광범위한 여론형성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비교적 공정한듯한 주장도 반대와 비판의견이 수용되지 않았을때 그 공정성이 충당될 길이 없다. 그때문에 비판세력과의 대화를 거치지 않았거나 반대세력이 제거된 채 강행되는 「그공정한 듯한 주장」 도 처음에는 막강한 힘을 가진 듯 하면서도 사실은 맥이 빠지고 종래에는 국민적 지지마저 상실하게된다. 비판과 반대가 없으면 진정한 찬성이 나올수 없다. 비판과 반대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곳에 힘있는 찬성이 있을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선과 악이 상대적 의미를 가질때가 있듯이 반대와 찬성도 그럴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위기 조성돼야>
중심으로부터의 찬성과 지지의 논리를 이끌어내어 그것을 힘있는 주장으로 펴나가기 위해서는 비판과 반대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한다.
우리는 한때 대학사회에서 지식인의 어용화를 규탄하는 소리를 들어왔다.
지식의 사회활동을 누가 탓할까마는 그것이 지식의 비판과 반대의 기능적 통로를 열어놓지 않은데다 일방적·강제적으로 이용당한데서 제기된 문제였다고 본다.
온당한 비판과 반대는 크게 보아 다음의 두 경우에 제기될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어떤 주장이 상식의 기준에서 벗어났 을 경우이다. 이 경우는 합리와 설득의 논리는 배제되고 힘의 논리가 작용하기 쉽다.
여기에서는 내적으로 하의상달식의 여론수렴과정보다는상명하달식의 일사불란한 명령계통만 중시되고 외적으로 대화와 설득의 유연성보다는 밀어붙이는식의 강경자세가 나타나기 십상이다. 그 결과는 경색된 사회구조를 초래할 뿐이다. 따라서 더이상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합리성에 근거한 상식의 회복이 급선무다.
해방이후 수십년간의 교육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상식의 선」 이 어떤 것인가를 어느정도 우리에게 깨우쳐 주었다.

<개혁의 계기마련>
비판과 반대가 제기되는 또 하나의 경우는 역사발전에 따라 모순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주장과 제도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인간과 사회가 바뀌어 역사가 발전하면 거기에 모순이 파생되게 마련이다. 그 모순을 시대변화에 따라 개혁해 나가는 것이 순리적이요, 그 사회의 파국용 막는 길이다.
순리적으로 개혁해 나가기 위해서 또한 비관과 반대의 의견이 제기되고 그것이 통합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게 된다.
이때 그 비판과 반대는 역사발전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고 개혁을 위한 필요불가결의 요소가 된다. 여기에서 비판과 반대의 저항사는 세계사에 있어서 새로운 의미를 갇게된다. 부정의 부정이 더 강한 긍정이 되듯이 비판과 반대의 부정의 논리는 더 강력한 긍정의 이론을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참된 화합의 길로>
우리는 자신이 만든 단두대에서 처형된 「길로틴의 단두대 의 일화와 자신이 쏜 화살이 돌아와 자신을 맞혔다는 「부머랭의 화살」 의 신화를 기억한다. 같은 사실을 유신정권의 정치인들에게서 발견한 바 있다. 모두 비판과 반대를 적절하게 수용하지 못한데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을까. 역사에서 이런 사실을 보고있는 우리는 「진정한 화합」 또한 비판의견의 수용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모두들 알고있는 평범한 의견을 되풀이해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