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키면 꼬리 자르는 「도마뱀수법」|돈·금덩이 든 가방 왜 자주 버려지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최근 들어 수억원 어치의 금덩이 또는 달러가 든 주인 없는 가방이 공항 검사대에서 잇달아 발견되고있다.
이는 『낌새가 이상하면 포기한다』는 지게꾼(밀수 운반원)들의 「도마뱀 수법」에 의한 것.
도마뱀이 꼬리를 잡히면 스스로 꼬리를 끊고 숨어버리듯 점조직으로 이뤄진 국제밀수단들도 세관원이나 공항경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싶으면 미련없이 물건을 포기함으로써 수사방으로부터 벗어나는 수법을 쓰고있는 것이다.
23일 국내선 도착장에서 발견된 금괴1백6개(5백30냥2억5천만원 상당)와 지난10일 김포공항 국제선 출국장에 버려진 9만7천 달러가 든 가방 모두가 공항의 이상한 낌새에 포기한 물건들이었다.
이 두건의 사건은 공교롭게도 사전에 수사당국에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정보가 입수되었다. 이에 따라 공항의 경비가 삼엄해졌고 운반책은 자연히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감지하고 몸만 빠져나간 것이다.
한동안 뜸하던 금괴밀수는 지난해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 지난 한해동안 김포세관에서만도 모두 2백11kg(싯가26억원)이 적발됐다.
금괴밀수가 최근 들어 극성을 떨고있는 것은 우리 나라 금값이 국제시세에 비해 비싸기 때문이다.
금1g당 국내시세는 1만1천2백원 선으로 국제시세 9천1백70원에 비해 12.2%가 비싸다. 더구나 국내 금값은 여기에 특별소비세 52%가 부과되기 때문에 국제시세에 비해 20%가 더 비싼셈. 따라서 금괴1개(5냥짜리)만 갖고 들어오면 손쉽게 50만원이 남을 수 있어 밀수조직은 항상 한국시장을 노리고있다.
금괴밀반입과 그 대금인 달러 반출의 하수인들은 지금까지 중국인들이 대종을 이뤘으나 최근들어 이들에 대한 한국경찰의 감시가 강화되자 이스라엘·스웨덴·캐나다·영국인 등 구미계집단으로 바뀌었다.
이는 금괴밀수 배후조직의 전략변경. 그러나 아시아지역 금괴조직의 대부로 알려진 홍콩의 「빈센트파」의 정체가 최근의 잇단 다국적 하수인들의 검거로 밝혀지자 『물건을 포기하더라도 잡히지 말자』는 새로운 지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밀수를 기도한 범죄조직은 국제선이 국내선으로 바뀌는 항공기의 자격변경 등 국내공항사정에 정통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항공기는 일본 오오사까에서 김해에 도착한 후 제주를 거쳐 서울로 오게돼 있으며 만일 금괴가 든 문제의 가방이 항공기안에 그대로 남겨질 수만 있다면 세관통관검색을 받지 않고 서울까지 운반될 수 있다는 허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이 정확히 제보를 한 것은 현재검찰과 경찰에서 수사를 벌이고 있는 홍콩거점 금괴밀수조직 「빈센트파」일 것으로 보고있다.

<엄주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