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주워 네딸 키우는 난지도 어머니 하정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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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개포구상암동 482번지. 88만9천여평 난지도에 자리잡은 8백여가구의 한결갈은 주소인데 하정숙씨(38)의 단칸방 판자집은 그 중 9통2반에 속한다.
종순·종희·종호·종여, 12살·10살·6살·3살난 딸넷을 혼자 힘으로 키우는 여가장. 9백50만 인구의 서울시 쓰레기 종말하차장인 난지도에 정착하여 쓰레기를 주워 팔며 살아온지 올해로 7년이다. 싫다고도 괴롭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의 하루는 보통 아침6시부터 시작된다. 새벽 동틀 무렵부터 서울시내의 쓰레기차들이 이곳 난지도에 몰려 오지만, 그는 적지않은 돈을 주고 당국과 계약을 맺은「앞벌이」가 거쳐 지나간 후 쓰레기를 골라야 하는 「뒷벌이」인 까닭에 더 일찍 서두를 필요가 없다.
방 한간, 부엌 한간의 판자집은 지난 5월 먼저 살던 집이 불에 타는 바람에 20만원을 주고 사 이사온 것인데, 쓰레기 속에서 주운 판자로 내벽과 천장을 잇고 비가 새지 않도록 천장은 비닐로 싸 올해같은 무더운 여름에도 바람 한점 통하지 않는다. 역한 쓰레기 냄새에도 그는 이미 면역이 된지 오래다.
아침 6시쯤 아침밥을 드는둥 마는둥하고 도시락을 싸들고 걸어서 10분거리의 「현장」(쓰레기 하치장)에 닿으면 저녁 7, 8시까지 일한다. 쓰레기는 서울의 17개 구별로 하차되는데 종로구가 「알챙이」(알짜)가 많아 인기지만 그의 구역은 용산구다.
『알루미늄제 맥주깡통·쇠붙이가 「알챙이」지만 뒷벌이에겐 좀처럼 걸리지 않아요. 식용유병 같은 「물렁이」가 고작이지요. 열흘에 한번씩 일정한 날이 고물장수가 와 물건을 사가는 「개근날」인데 시중 경기에 따라 값의 변동이 많아요』
알챙이는 1관(3.5kg) 3천5백원, 그 밑으로 1천5백원,7백50원까지. 하씨는 한달평균 20만원의 수입으로 먹고 살 수는 있다고 한다. 어지간한 가구·그릇·의류는 쓰레기 속에서 주워 해결한다.
지난해 봄, 착하지만 무능했던 남편이 급환으로 세상을 떠 주변에선 재혼을 권하지만 그는 전혀 생각이 없다. 『남자가 내 인생에 무슨 소용이냐』고 그는 반문한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채 자란 어린 시절, 가수가 될 꿈을 안고 19살때 고향 제천에서 상경, 가요학원을 다니다 빈털터리 남편과의 사기결혼으로 불행했던 날들의 기억 때문인 듯 하다.
올가올 이곳 난지도 사람들은 망우동으로 옮겨지리라 한다.86년 현대식 쓰레기 처리공장이 완공되면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러나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몸만 성하면 살게 돼요. 딸아이나 잘 키웠으면 합니다. 모든 것을 「팔자탓」으로 돌리고 열심히 산다.
그가 일하러 갈 때면 돌볼 이 없는 6살, 3살 어린 것 때문에 둘째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것이 지금 그의 가장 큰 걱정이다. 때때로 자신의 몸이 아픈 것도 걱정이다. 자신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니까….<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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