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아이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애들 방학을 며칠 앞둔 몹시도 무덥던 어느날, 디스크란 병으로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다.
밥은 중3인 큰애가, 청소는 국민학교 6학년인 막내가 맡았다.
부엌일을 시켜본 일도, 해본 일도 없는 큰애는 아빠의 지도에 따라 밥 짖기며 설겆이를 곧잘 해냈다. 그뿐 아니다. 그렇게 아침잠이 많아 깨워도 일어날줄 모르던 애가 괘종시계를 머리맡에 놓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밥짓고 TV공부까지-하는게 아닌가. 1주일이 지난후 오전만 보충 수업할줄 알았던 첫날 학교에서 돌아온 큰애 는근심스런 얼굴이다. 내일부터 오후 늦게까지 수업하는데 엄마 때문에 걱정이라는 거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잖니.』
내가 애써 웃어 보이니 저도 따라 빙그레 웃으며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한 표정이었다. 방을 나서려는 큰애에게 1만원짜리를 손에 쥐어 주었다.
『엄마, 맏딸이 살림 밑천이라는 시대는 옛날 얘기예요.「아들, 딸 구별말고…·」시대도 이미 지난지 오랜데요.』 옆에서 슬술 눈치만 보던 막내가 거든다.
『그럼 지금은 뭐야.』
『우리 세대는 무자식이 상팔자 라는거야.』
『야! 그럼 나중엔 사람은없고 지구만 남겠네.』
『그야 안 죽으면 되지.』
끝간데 없이 이어 받던 막내는 몰리는지『그럼 내가 안 죽는걸 연구할게. 엄마도 안 아프시게하고.』
기어이 과학자가 되겠다는 막내가 무슨 신기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우쭐한다. 갑자기 성숙해진 아들들의 모습을 본다. (송경남)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고지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