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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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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오쭝량(毛宗良)은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가전 기술자다. 본사에서 세탁기 한 대를 차오저우에 사는 고객에게 배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승용차를 타고 가다 외진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다른 차편을 구할 수 없던 그는 90㎏짜리 세탁기를 메고 걷기 시작했다. 섭씨 38도의 더위에 2시간30분 동안 걸어 배달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탈진했다. 1995년 7월의 일이다.

친관성(秦冠勝)은 윈난성 쿤밍의 애프터서비스센터 직원이다. 자오퉁의 고객에게서 방문 서비스 요청을 받았다. 버스를 탔으나 억수 같은 비로 산사태가 나 찻길이 끊겼다. 밤 11시였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4시. 그는 고객의 단잠을 깨울까 저어해 네 시간을 기다렸다 방문했다. 1997년 7월 이야기다. 이들의 공통점은 중국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Haier.海爾)'의 직원이라는 점이다.

하이얼의 정신력은 어디서 나올까. 하이얼 직원들이 좋아한다는 불경(佛經) 한 구절이 있다. "물 한 방울을 마르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바다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이얼이라는 바다로 뛰어들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하이얼 직원들의 각오를 대변한다고 한다.

배경엔 "기업의 핵심은 사람"이라는 신조를 가진 장루이민(張瑞敏)이라는 인물이 있다. 1984년 겨울 35세의 나이에 147만 위안 적자 기업의 공장장이 된 그는 돈 빌리는 일로 업무를 시작했다. 춘절(春節.설) 보너스로 생선 3㎏씩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직원을 받들지 않고선 공장도, 경영도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병사는 장군을 따른다. 지도자는 부하의 단점을 몰라도 좋다. 그러나 장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의 단점을 포용하고 장점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인재 경영관이 마오쭝량과 친관성의 열성을 낳았다.

하이얼이 이틀 후인 새해부터 그 정성을 앞세워 본격적인 한국시장 공략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2년 전 한국에 진출한 하이얼이 이제까지 선보인 제품은 20여 개. 새해엔 한 해 동안 50여 개의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2010년까지 한국 내 3대 가전 브랜드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도 천명했다. 이제 중국시장 공략은 차치하고, 한국시장 수성도 어려운 게 아닌가 싶다.

남들은 먼 길 떠나기에 앞서 신발끈을 고쳐 매고 있다는데, 우리의 새해 준비는 무언가.

유상철 아시아뉴스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