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발이와 죠오센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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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일문화계인사들 10여명이 현해탄의 페리호 선상에서 흉금을 털어놓은 격의없는 대화를 시도했지만 양국간에 가로 놓인 오해와 편견의 벽을 허물지 못한채 욕설이 튀어나와 「욕설의향연」 을 벌이는데 그쳤다고 한다.
까다로운 외교상의 격식을 무시하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거리낌없이 나누어보자는것이 이번 대화의 본래 의도인줄 안다.
대화를 영어로 「Dialogue」라한다. 다이얼로그란 「두사람간의 논리」 라는 뜻이다. 두사람이 평등한 수평적 관계에서 논리에 맞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 행위가 곧 대화다. 따라서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두가지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하나는 대화의 두 당사자가 상대방에 대해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치에 맞지않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천년 이상 일본은 우리를 괴롭혀 왔다. 따라서 일본과 대화를 해야할 상황적 조건하에 놓이게 되었다 해서 가슴속에 사무친 원한을 모두 잊어버릴수 없다. 왜냐하면 일본사람의 얼굴만 보면 신라시대 이후 끊임없이 이땅을 유린한 왜구의 행패가 생각나고 36년간 한민족을 착취한 일제의 격정이 회상되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얼마나 부정적인 편견을 가졌나를 알기 위해 구태여 일본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뒤질 필요도 없다. 일본인이 쓴 소설, 일본인이 만든 영화에 등장하는 한국인의 스테레오타이프를 보면 일본인의 한국인관이 얼마나 편견에 차있고 또 왜곡 되었나를 쉽게 알수 있다.
두 쪽이 다 대화를 통한 우호선린의 관계를 원하고 있지만 무의식중에 「쪽발이」와 「죠오센진」 이란 말이 튀어 나오는데 양국이 당면한 현안의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우리가 일본을 알기위해 노력해야하는 까닭은 일본을 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데 있다.
양국이 모두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는 문화적 편견을 털어버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겠다는 겸허한 자세를 취할 때 선린우호의 관계가 이루어질수 있다. 불행했던 과거 때문에 피차가 마음의 창문을 열지 못한다면 영원히 「쪽발이」 쪽발이로, 「죠오센진」은 죠오센진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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