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이긴 인간승리"…LA의 두남녀|암극복 FP슬링 금메달리스트 미 불라트닉|하반신불구 이긴 뉴질랜드 양궁의 페어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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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암의 공포에서 일어나 금메달을 따냈다.
미국레슬링 그레코로만형슈퍼헤비급(1백kg이상) 금메달리스트 「제프·불라트닉」(27).
그의 승리는 불치의 병에서 신음하고 좌절감에 몸부림치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문을 열어주었고 온갖 한계를 극복하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올림픽정신이 아름답게 꽃피운 쾌거였다.
『올림픽은 한 국가의 이데올로기롤 위해 마련된것이 아니라 오로지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하기위해 마련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이 정신적 유산은 LA에서 「불라트닉」과 휠체어를 타고 출전한 뉴질랜드 여자 양궁의 「네로리·페어홀」(40)에 의해 생생하게 재현되고있다.
콜리시엄을 수놓았던 7천8백여 세계 건각속에 유일하게 휠체어를 타고 입장했던 「페어홀」양.
하반신불수라는 치명적인 신체적 악조건을 넘어 양궁의 금메달을 노리고있다.
올림픽사상 최대의 인간드라머를 연출한 불굴의 두남녀선수를 만나본다.
○…황소만한 사나이는 주먹같은 눈물을 뚝뚝흘리며 엉엉울었다.
그의 온몸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었다.
너무나도 격하게 몸을 떨어 한참동안은 취재진도 말을 불일수 없었다.
3일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최종결승전이 열린 애나하임컨벤션센터. 5천의 관중과 실황중계를 지켜보던 미국전역의 시청자들도 함께 울었다.
『승리의 기쁨을, 이 영광을 가족·친구들, 그리고 하느님곁에 있는 동생 「데이브」에게 드립니다.』
체중 1백22kg의 거구 「블라트닉」이 암에 걸린것을 안것은 2년전인 82년 7월이었다.
그가 본격적인 연습을 한 것은 불과 l년정도. 어느 누구도 그를 금메달리스트까지로는 생각못했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출전당시 그의 몸무게는 1백13kg.
슈퍼헤비급선수로는 작은 체중이었다. 1회전에서 유고슬라비아의 「레픽·메미세빅」을 이겼으나 2회전에서 그리스의 「게오르그·포지디스」에게 판정패했다.
그러나 「메미세빅」이 「포지디스」를 이겨주는 바람에 결승진출의 행운을 찾았다.
결승전상대는 스웨덴의 「토머스·요한슨」. 1백25kg으로 l2kg이나 「블라트닉」 보다 무거웠다.
『달리는 힘을 정신력으로 버텼읍니다』 사실 그의 두번의 승리모두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따낸 점수때문이었다.
「요한슨」과 0-0으로 평평하게 맞붙던 「불라트닉」은 게임종료 1분을 남기고 l점, 47초를 남기고 누르기로1점을 따내 2-0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나는 내생명이 끝난다고 생각한일이 한번도 없읍니다. 나의 주치의도 나는 해낼수있다고 말했읍니다. 나는완쾌됐습니다. 정상인입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블라트닉」. 미국레슬링 슈퍼헤비급사상 최초의 올림픽금메달리스트란 기록과 함께 그는 영원히 세계인의 가슴속에 기억될 것이다.
○…『인생의 금메달을 향해 활시위를 당깁니다.』
5일 첫경기를 갖는 뉴질랜드의 여자양궁 「네로리·페어홀」(40)은 힘차게 휠체어를 굴려 연습장으로 향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기능, 걷는다는 기능을 운동선수로서 상실하고 휠체어에 몸을 실어 사상 처음 올림픽에 참전한 그녀는 『불구는 외형적인 불편함일뿐 자신은 정상인과 조금도 다름이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24세가되던해 어느날밤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던 「페어홀」은 급커브길에서 실수, 20m 아래 언덕으로 굴렀다.
21시간뒤 행인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겼고 7개월간의 병원치료가 끝났을 때 척추마비에 의한 하반신불구라는 선고가 내려졌다.
『내가갖고있던 이상·꿈, 그리고 승마선수로 올림픽에서 달려보는게 끝났다 생각될때 나는 숨만 쉴뿐 죽은존재라 느껴지더군요』
신체장애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우울증·노여움·비탄이 그녀에게도 찾아왔다.
『3년이 걸렸어요. 자기 극복을 하는데…. 그리고 그 방법은 역시 스포츠를 통해서라는걸 느꼈지요.』
「페어홀」은 하이델베르크장애자 올림픽대회에 원반던지기선수로 출전했다.
그러나 관중의 동정을 사고 격려의박수는 받았지만 정상인이었을때의 정열과 의욕은 살아나지 않았다.
더 힘들고 격렬한 것, 앉아서 할수있는 그런운동으로 양궁을 택했다.
74년 미연방 장애자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80년, 81년, 83년, 84년 계속해서 뉴질랜드 챔피언을 차지했다.
기자들이 『당신은 장애자들에게 자극을 주기위해 출전했느냐』는질문에 「페어홀」은 『나는 양궁선수로 여기에 왔다』고 했다.
그 이유에대해 양궁이 자기인생의 한부분이고 활시위를 당길때 자신의 존재가 느껴지기 때문이라며 관중의 진정한 박수는 자신을 그들과 똑같은 정상인으로 대해주는것이라고 했다.
세계의 눈은 5일 엘도라도 파크에서 최초의 올림픽장애자 메달리스트가 탄생할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본사 올림픽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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