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탄광서 하루 12시간 막장 노동 … 죽도록 매질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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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가루 날리는 막장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지. 한숨 돌릴라치면 어김없이 몽둥이가 날아왔어. 도망치다 붙잡혀 죽도록 매질도 당했지.”

 지난 9일 오후 2시 광주광역시 화정동 청소년문화의 집. 머리가 하얗게 센 공재수(92·사진)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후쿠오카(福岡)현 아소(麻生) 탄광에 강제로 끌려갔던 경험담을 풀어 놨다. 일본이 강제징용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데 반대해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만든 행사에서였다.

  공 할아버지는 가끔씩 허공을 쳐다보기도 하면서 얘기를 이어갔다. “매질도 직접 하지 않고 조선인들에게 동료들을 때리도록 시켰어. 그러면서 ‘조선인은 항상 거짓말만 한다’고 했는데 지금 일본이 하는 게 거짓말과 위선이 아니면 뭐야. 일본의 행태가 너무 기가 막혀 이대로 죽으면 안 되겠다 싶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증언을 하는 거야.”

 공 할아버지는 “밥이 어디 있어. 혹독하게 일을 시키면서도 그나마 하루 두 끼 콩깻묵도 제대로 주지 않았는데”라면서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 그는 “우리나라가 일본이 무서워하는 튼튼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젊은이들이 단결해 달라”고 당부했다. 공 할아버지는 스물두 살이던 1943년 아소 탄광에 끌려가 2년여 동안 노역하다 광복 후 고향인 경기도 양평으로 돌아왔다. 그는 강제노역 당시 장티푸스에 걸렸던 일도 전했다. “43년 봄일 거야. 모두들 전염병에 걸려 가지고…. 병원에 한 200명이 갔는데 하루 저녁 자고 나면 20~30명씩 없어져. 병원에 간 사람들 중에 살아 나온 사람은 몇 안됐어.” 그가 끌려갔던 아소 탄광은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의 증조할아버지인 아소 다키치(麻生太吉)가 만들었다. 아소 탄광에는 당시 조선인 7996명이 끌려가 56명이 사망했다. 7996명은 일본 단일 기업에 강제 노역 간 것으로는 최대 규모다.

 이날 행사에서는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나가사키(長崎)현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강제노역 했던 김한수(97) 할아버지도 증언하려 했으나 전날 교통사고를 당해 참석하지 못했다. 공 할아버지가 있었던 아소 탄광은 일본이 추진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상에는 들어 있지 않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오는 16일 같은 장소에서 박사영(92) 할아버지를 초청해 증언을 듣는다. 박 할아버지는 나가사키 사세보(佐世保) 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31일에는 강제노역 및 원폭 피해자 유족들이 증언자로 나온다. 시민모임은 또 다음달 3~7일 나가사키 일대 강제노역 현장을 둘러보는 현장 답사를 한다.

광주광역시=최경호·김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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