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대개 종착지다. 이슈란 이슈는 다 제기되지만 선거 결과를 통해 정리되곤 한다. 7일 치러진 영국 총선도 겉모양은 그렇다. 집권 보수당이 1992년 이후 처음으로 과반(326석)을 넘는 정당이 됐다(331석). 참패한 노동당 ·자민당은 물론 보수당도 그러나 축배를 들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난제 중 난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① 두 ‘연합’을 구하라=영국에서 집권당이 의석을 늘린 경우는 거의 없다. 인기없는 긴축 정책을 편 후라면 더더욱 그렇다. 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가 예외일 뿐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그걸 해냈다(22석 증가).
캐머런 총리는 그러나 곧바로 ‘영국과 유럽연합을 살려야 한다’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스코틀랜드를 싹쓸이할 정도로 스코틀랜드의 강한 민족주의 열망을 여하히 달래서 영국에 남아 있게 하느냐가 하나라면, EU와의 재협상을 토대로 2017년 이전 EU 탈퇴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하는데 그때 주민들이 EU 잔류를 선택케 하느냐가 또 하나다. 두 난제는 서로 얽혀 있다. EU 탈퇴가 정해지면 친EU 정서가 강한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선택할 게 분명해서다. 캐머런 총리는 가장 신뢰하는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을 사실상 부총리로 지명, EU와의 협상을 맡겼다.
② 패자들의 ‘영혼’ 찾기=노동당·자유민주당·영국독립당(UKIP) 당수가 선거 패배 후 물러났다. 새로 선출되는 당수는 다음 총선 때까지 5년간 당을 이끈다. 당권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패배한 노동당 당수인 에드 밀리밴드는 ‘붉은 에드’(Red Eed)로 불릴 정도로 노동당의 기존 가치에 충실했다. 당내에선 그러나 중도로 갔어야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제3의 길’을 내세우며 12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노선의 추종자들이다. 블레어 자신도 선거 후 “정상으로 가는 길은 중도에 있다. 노동당은 동정심과 보살핌뿐만이 아니라 (기업가들의) 야망과 열망을 위한 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좌파와 블레어주의자 간의 한 판 대결이 벌어졌다.
8석 정당으로 몰락한 자민당도 시끄럽다. 2004년 『오렌지 북』을 펴내면서 자유주의자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했던 그룹은 “더 자유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물러난 닉 클레그 당수가 이들 중 한 명이다. 당내 좌편향 그룹은 “5년간 야당을 하면서 배터리를 충전해야한다”고 맞서고 있다.
③ 500만 표에 두 명 당선=영국은 한 지역구에서 최다 득표자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다. 우리와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 우리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해 정당 득표율에 따라 어느 정도 의석을 배분한다. 영국은 오로지 소선거구제다.
이러다 보니 영국 전역에서 388만표(12.7%)를 얻은 UKIP이나 115만표(3.8%)의 녹색당 모두 각각 한 석을 얻는데 그쳤다. 한 UKIP 지지자는 “로또보다 못한 선거”라고 했다. 반면 스코틀랜드에서 몰표를 받은 SNP는 145만표(4.7%)에도 56석을 차지했다. 영국 내에선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④ 여론조사 들여다본다=6주 선거 운동기간 중 쏟아졌던 여론조사 중 단 하나도 보수당의 단독 과반 달성을 예상한 건 없었다. 영국 BBC 방송의 여론조사 담당 기자는 “(그간 실시한)91기가 바이트 자료를 다시 다 봤는데 단 한 번도 이번 결과와 유사했던 게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고 토로했다. 결국 여론조사기관들이 모여서 만든 영국여론조사위원회가 원인을 조사키로 했다. 출구조사까지 틀렸던 92년에도 위원회가 꾸려졌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