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한 듯 모든걸 순순히 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25일 하오 검찰의 소환을 받은 이정직씨가 수사관 2명과 함께 검찰청사에 도착한 것은 하오4시40분쯤.
이씨는 평소와 달리 안경을 낀 모습으로 검찰청 서문을 통해 15층 조사실로 직행.
이 때문에 이씨의 얼굴사진까지 준비 도착순간을 잡기 위해 정문 쪽을 지키던 보도진들만 「닭 쫓던 개」 꼴이 돼버렸다.

<휴가 돌연 취소도>
○…서울지방국세청이 이정직씨를. 검찰에 고발한 것은25일 하오3시쯤. 조관행 서울지방국세청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대지종합기술공사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2시간전이다.
이때부터 검찰은 갑자기 분주해져 이종남 서울지검 검사장은 강원일 서울지검 제2차장과 김수연 서울지검형사4부장 등을 불러 잇단 구수회의를 여는가하면 이명희 대검차장에게 보고를 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마침 이날부터 김석휘 검찰총장과 이검사장은 하기휴가예정이었으나 김총장만 예정대로 고향인 충북청주로 떠났을 뿐 이검사장은 돌연 휴가를 취소, 이날아침 정상 출근해 모종의 중대사건수사가 있을 것이란 추측이 검찰청주변에 나돌았다.
그러나 이검사장은 김총장과 휴가가 겹쳐 연기했을 뿐이라고 안개를 피우다 하오4시쯤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에 『이씨가 고발돼 소환했다』 고 이씨 수사착수 사실을 시인했다.

<다른 단서는 없어>
○…이번 사건이 대검중앙수사부나 서울지검 특수부로 배당되지 않고 형사부로 배당됨으로써 주위에선 『이번 사건 역시 문형태씨 투서사건과 마찬가지로 축소지향이 될 것』이라고 예상.
또 검찰은 『국세청이 조사한 것을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하므로 수사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김수연 부장검사이외에 형사4부의 김학재· 김주덕 두 검사를 수사팀에 보강, 구속을 위한 「속전수사」가 될 것임을 점치게 했다.
이검사장도 『수사가 어느 정도 확대되느냐』 『공무원과의 비리·결탁여부도 캐느냐』 는 기자들의 질문에 『앞으로 조사해봐야 알겠다』면서도 『그러나 현 상태로선 국세청이 고발한 탈세부분이외에 다른 범죄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다』고 밝혀 수사를 확대시키지 않을 방침임을 시사했다.
김총장의 휴가와 관련, 이씨에 대한 고발여부는 김총장 휴가 전날인 24일 이전에 결정돼 국세청으로부터 검찰에 통보됐을 것이란 추측을 낳았다.
검찰관계자는 김수연 서울지검형사4부장이 이씨 고발장이 접수되기 전부터 이번, 사건수사를 지시 받고 사전연구를 했다고 귀띔.
이씨는 수사를 받는 동안 시종 담담한 표정을 지었으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국세청의 조사내용울 대부분 시인, 수사가 비교적 수월했다는 후문.
이 때문에 이씨에 대한 수사는 이씨를 소환한지 12시간만인 26일 상오5시쯤 사실상 마무리됐고 그 이후엔 보고서 작성과 영장청구에 따른 서류작성에 들어갔다는 것.

<석간시간 맞춘다>
○…이검사장은 25일 하오5시쯤 국세청발표가 있을 무렵 기자들과 만나 『내일 석간마감시간(상오10시40분)에 쫓기지 않도록 중간발표를 하겠다. 구속될 경우 이씨를 억지로 빼돌리거나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방해하지 않겠다』고 밝혀 26일 상오 중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임을 암시했다.
이어 이검사장은 하오6시40분쯤 정상대로 퇴근했고 강원일 차장도 곧이어 퇴청, 검찰의 이씨 구속방침이 결정됐음을 뒷받침해줬다.
이씨 구속과 관련, 항간에 『정래혁씨도 3억원이나 탈세했는데 형사처벌을 않은 것은 이번 사건과 비교할 때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나돌자 검찰은 다소 당황해하는 눈치.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씨의 경우는 형사처벌대상인 세금포탈이 아니라 단순한 세액탈루였다』고 애써 설명.

<영장발부에 35분>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26일 상오9시10분쯤 서울지검 김수연 부장검사가 신청, 35분 만인 상오9시45분쯤 서울형사지법 채태병 판사에 의해 발부됐다.
영장은 서울형사지법 영장계의 접수를 거쳐 판사실로 가는 통상절차와는 달리 검찰수사관이 가져가 발부 받은 뒤 영장원부에 올렸다.

<구치소로 직행>
○…이씨는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상오10시30분쯤 엘리베이터를 타고 l5층 조사실에서 1층 현관에 도착, 담담한 표정으로 수사관 1명과 함께 서울 1가3015호 검은색 마크V승용차에 올랐다.
이씨는 옅은 베이지색 바탕에 가는 줄무늬가 있는 싱글 차림에 곤색 넥타이를 매고있었으며 수갑을 앞으로 찬 채 보도진들의 카메라 세례에 체념한듯 애써 피하려 하지 않았다.
이씨는 또 『지금심정이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없이 굳은 표정이었고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직행, 간단한 확인절차를 거쳐 입감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