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주, 이번엔 경찰 … “스스로 극한 내몰 때 뭔가 더 나옵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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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의 연대기’에서 음모의 덫에 걸린 경찰 최 반장(손현주)의 눈은 긴장과 불안 탓에 늘 핏발이 서있다. 손현주는 “최 반장의 심리가 몹시 나를 괴롭혔다. 감독이 미웠던 때도 많았다”고 했다. [사진 CJ E&M]

늘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던 배우 손현주(50)는 언젠가부터 스릴러의 단골 주인공이 됐다. 딸과 아내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TV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 괴한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영화 ‘숨바꼭질’) 그는 뛰고 또 뛰었다. 그의 고군분투가 설득력과 공감을 함께 이끌어내는 건 너무나 인간적인 그의 얼굴 때문일 터다.

손현주는 영화 ‘악의 연대기’(14일 개봉, 백운학 감독)에서도 처절한 사투 속에 또 다른 인간적 고뇌를 그려낸다. 그가 연기한 강남경찰서 최 반장은 승진의 탄탄대로를 밟아가던 중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설상가상으로 그 사건을 맡게 된다. 더 큰 사건들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자신을 옭아맨 음모의 실체와 맞닥뜨린다. 그는 “촬영 내내 숨기고 감추는 연기를 하면서 정말 힘들고 외로웠다”고 말했다.

 - 이번 영화도 그렇고, 지금 찍고 있는 ‘더 폰’도 스릴러다. 계속 스릴러를 하는 이유는.

 “‘숨바꼭질’(2013)이 흥행하면서, 스릴러 시나리오가 주로 들어온다. 드라마 할 때는 바람 핀 남편, 소시민 역할만 줄곧 했었는데(웃음). 스릴러도 주로 몸으로 부딪혀가며 파헤치는 것들이다. 연극 할 때부터 스스로를 극한으로 내몰아 뭔가 더 뽑아낼 때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힘든 작품들을 선택하는 것 같다. 편한 드라마나 영화는 내게 안 온다.”

 - 최 반장을 악한 인물로만 보긴 어렵지 않나.

 “지금껏 잘해왔는데 하나라도 실수를 저지르면 덮어버리고 싶은 욕망, 그런 이중성이 누구나 있지 않나. 그런 차원에서 최 반장 캐릭터에 접근했다. 최 반장이 후배 앞에서 ‘나도 한때는 정의로운 경찰이었지’라고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누구나 타락한 현실 속에 살다 보면 세월의 때가 묻어 이중적인 모습이 돼버린다는 불편한 진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최 반장을 연기하며 내 마음속의 악(惡)과 마주해야 하는 게 무척 고통스러웠다. 시나리오와 기싸움을 벌이며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 배우로서 남의 인생을 산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 이번에도 액션신이 많다. 힘들진 않나.

 “2006년 드라마 촬영 중 왼쪽 무릎을 크게 다쳐, 지금도 액션신을 찍고 나면 아프다. 하지만 촬영할 때는 잊고 열심히 뛴다. 연기 자체가 모르핀(강력한 진통제)인 것 같다(웃음). 지난해 여름 갑상샘암 수술을 받느라 촬영이 한 달 늦어졌는데,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두 기다려줬다. 정말 감사했다.”

 - 평범한 중년남자의 사투라는 점에서 공감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 덕을 많이 본다. 많은 이들이 ‘저런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연기를 위해 일상에서도 평범하려 무지 애쓴다. 평범함이야말로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게 해준 큰 힘이다. 내년이면 영화 데뷔 20년인데 초반에는 해학을 표현하다가 요즘은 스릴러물의 단골이 됐다. 그 다음은 뭘까? 항상 기분 좋은 긴장감을 유지하며 산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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