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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한국에도 ‘마마데이’와 ‘파파데이’가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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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네덜란드 출장 중이다. 잠시 짬을 내 알고 지내던 한국인 유학생 부부와 함께 식사했다. 몇 년째 네덜란드 대학에서 박사(아내)·석사(남편) 과정에 다니는 이들은 다음달 공주님 출산을 앞두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파트타임 근무를 하는 연구원이자 공부하는 학생인 데다 그 땅에선 외국인 신분이기도 하다. 나는 한국의 팍팍한 육아 현실을 떠올리며 ‘저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을까’ 의아했다.

 정작 본인들은 “육아 걱정은 전혀 없다”고 장담했다. 아이를 마음 편히 기르는 네덜란드의 각종 제도 덕분이었다. 그들이 첫손에 꼽은 건 자녀가 만 8세 되기 전까지 쓰는 육아휴가(최대 6개월)다. 근무를 계속하면서 일주일에 하루, 이틀씩 나눠 쓸 수 있는 데다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날 쉴 수 있다. 여성은 물론 남성도 자유롭게 쓰는 편이다. 재택 근무도 유연하게 인정된다. 부모가 평일에 번갈아 육아휴가를 쓰면서 엄마가 아이를 보는 날인 ‘마마다흐(마마데이)’와 아빠가 아이를 챙기는 ‘파파다흐(파파데이)’가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부모가 모두 직장에 나가는 날도 문제없다. 시설 좋고 안전한 어린이집이 많아 안심하고 아이를 맡긴다고 한다. 가난한 외국인 유학생도 고용보험에만 가입돼 있으면 싼 비용으로 똑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에선 두 개, 세 개의 유모차를 나란히 끌고 다니는 젊은 부모들이 많이 보였다. ‘아이를 누구에게 맡겨 어떻게 키울까’ 고민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아이와 어떻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까’를 고민한다고 했다. 유학생 부부는 “선진국의 육아 환경을 접해보니 둘째도, 셋째도 낳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우리 육아 현실은 ‘후진적’이다. 어린이집에서 아동 학대가 벌어진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전해지고, 국공립 어린이집에 가려면 ‘태아’ 때부터 대기 순번을 받아놓아야 한다. 늙으신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놓고 ‘죄인’이 돼야 하는 상황. 평일 휴무는커녕 육아휴직조차 눈치를 봐야 한다. 세계 최저 출산율은 당연한 결과다.

 단기간에 네덜란드처럼 되지 못한다면 있는 제도라도 제대로 써먹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남자 공무원의 육아휴직 기간을 최대 3년까지 늘리는 공무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를 다른 직장 전체로 확대해보면 어떨까.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육아휴직을 쓰면 적어도 6년은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양질의 어린이집을 직장마다 설치하고, 퇴근 시간을 일정하게 만들어 ‘저녁이 있는 삶’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네덜란드까지 와서 ‘한국의 평범한 직장인 아빠’는 고민거리만 늘었다. 둘째도, 셋째도 낳겠다는 먼 나라 유학생 부부가 부럽다.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