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논문조작파문] 연구원은 눈 감고 전문가는 입 닫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황우석 교수가 교수직 사퇴를 발표한 가운데 25일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 연구실 주변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연합뉴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자 한국 과학계는 물론 세계 과학계가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조작 가능성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온 세계를 속이는 논문 조작이 가능했을까.

논문 조작에는 일부 연구원과 공저자들이 공모했다. 실험실의 폐쇄적인 분위기는 논문 조작 사실을 덮어주는 역할을 했다.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나 영국의 이언 윌머트 박사 등 세계적인 전문기관이나 전문가들도 황 교수의 조작을 간파하지 못했다. 이들은 오히려 황 교수의 논문에 신뢰도를 높여 주는 역할을 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황 교수에게 '묻지마'식 지원을 했고, 언론도 황우석 신화 만들기에 주력했다. 일부 과학자가 황 교수 논문에 의혹을 품었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 공모와 방조=논문 조작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은 피츠버그대에 파견됐다가 귀국한 김선종 연구원, 황 교수 팀원인 서울대 수의대 강성근 교수와 몇 명의 연구원이다. 김 연구원은 17일 피츠버그 현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황 교수 지시로 줄기세포 사진 2개를 11개로 늘렸으며 강성근 교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연구원도 공모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대 노정혜 연구처장은 23일 발표에서 논문 조작에 대해 "황 교수가 개입했을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연구원들의 진술도 그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종 연구원도 17일 기자회견에서 사진 조작에 대해 "황 교수, 강 교수, 연구원 몇 명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 연구팀원인 권대기 줄기세포연구팀장, 한양대 의대 윤현수 교수,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 등도 논문 조작에 관련돼 있다. 권 팀장은 배반포기 줄기세포를 김선종 연구원에게 전해 주는 등의 역할을 했다. 윤 교수는 미즈메디 의과학연구소장으로 있을 때 2, 3번 줄기세포의 테라토마 검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이사장은 900~1000개의 난자를 황 교수에게 제공했다.

◆ 폐쇄적인 연구실=황 교수팀은 조작 의혹이 제기되자 "수십 명이 연구에 참여하는데 어떻게 조작할 수 있겠느냐"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연구환경은 충분히 논문을 조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대 수의대 생명공학연구팀 연구원은 31명이다. 미즈메디병원 의과학연구소 연구원 4, 5명도 연구팀에 속한다. 그러나 연구팀은 서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구조다. 황 교수 연구팀은 줄기세포.동물복제.이종장기 등으로 나뉘어 있다. 줄기세포 연구도 체세포 핵 이식은 서울대가, 배양이나 DNA 검증 등은 미즈메디 연구소가 맡았다. 이 같은 분업체제에서는 다른 파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황 교수 팀의 한 연구원은 서울대 조사위가 논문 조작을 발표하기 직전까지 "줄기세포가 커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으며 황 교수를 믿는다"며 "사진 조작의 주범은 미즈메디병원 쪽"이라고 말했다.

2005년 5월 논문의 공저자 24명의 상당수도 논문 조작을 눈치채지 못했다. 노성일 이사장과 서울대 문신용 교수는 "2005년 5월 논문이 발표되기 전에 초안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대의 B교수도 "(공동저자로 올랐지만 내가) 논문에 기여한 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황 교수 연구팀 출신인 Y씨 부부가 6월 1일 MBC PD수첩 팀에 제보하면서 숨겨져 있던 논문 조작을 세상에 알렸다.

◆ 눈 뜨고 당한 전문가들=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논문 조작을 잡아내지 못했다. 사이언스는 실험실을 방문하거나 줄기세포의 시료를 받아 검사하지 않고 실험 데이터를 서류로 받아 검증했다. 가짜 실험 데이터를 제출했기 때문에 사이언스 측에서도 조작 여부를 가릴 수 없었던 것이다. 황 교수팀은 조작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이용했다. 황 교수는 환자 체세포에서 뽑은 DNA를 둘로 나눠 국과수에 검사를 의뢰했다. 국과수의 검사 결과는 당연히 두 개의 DNA가 같은 것으로 나왔다. 황 교수팀은 이 두 개의 DNA 지문 중 하나는 환자 체세포 DNA로, 다른 하나는 줄기세포 DNA로 논문에 수록했다. 결과적으로 국과수가 황 교수의 논문 조작을 도운 셈이 돼버렸다.

국내 전문가들도 '동료 감시'에 한계를 드러냈다. 의대 교수들을 비롯한 적지 않은 전문가가 황 교수 논문에 의문을 품었으나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황 교수를 질투한다는 비난이 두려웠던 것이다.

영국의 에든버러대 이언 윌머트 박사나 미국의 하버드대 조지 데일리 교수와 뉴욕 슬로언 케터링 암연구센터의 로렌스 스투더 박사 등 세계 유수의 줄기세포 학자들도 속아넘어갔다. 이들은 황 교수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를 보고 감동했다고 했다. 하지만 수정란 줄기세포와 맞춤형은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다.

특별취재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