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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고시 여풍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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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해 사법시험.행정고시에서도 여성이 강세를 보였다. 사법시험 합격자 1001명 가운데 여성이 323명으로 32.27%를 차지했고, 행정고시에서도 전체 합격자의 44%가 여성이었다. 특히 올해는 고시 3과 모두 여성이 수석을 휩쓸어 눈길을 끌었다.

사실 이런 얘기는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데다 이미 사회 각 분야에 여성들이 대거 진출해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황우석 교수 논문 진위 관련 기자회견 때도 취재진의 절반가량은 여성이었다.

2005년은 여성의 권익이 제도적.가시적으로 신장된 한 해로 기억될 만하다. 대표적인 것으로 여성가족부의 출범과 호주제 폐지를 꼽을 수 있다. 고시에서 여풍이 거세다는 보도가 나온 날 헌법재판소가 '아버지 성을 따라야 하는 민법조항은 헌법 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린 것도 여성계로선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이처럼 여권이 신장되고는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남녀평등은 국제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5월 발표한 한국의 남녀평등 성취도는 세계 58개국 가운데 54위에 머물렀다. 구미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중국(33위).일본(38위)은 물론, 방글라데시(39위).인도네시아(46위)보다도 낮은 수준이라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부문별로는 경제활동 기회가 55위, 정치적 권리가 56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이게 말로는 남녀 동반자 시대를 열었다는 우리의 초라한 성적표다. 이래선 안 된다. 여성의 사회 진출 숫자가 느는 데 만족해선 안 된다. 각 직장이나 사회에서 명실상부하게 여성의 역할이 제대로 실현되도록 제도나 관행 등을 과감하게 고쳐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이 보육문제의 해결이다. 그래야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 생활을 양립할 수 있게 된다. 기업들도 산전.후 휴가나 육아휴직 등을 혜택이 아니라 우수인력에 대한 당연한 관리 차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남성 위주로 짜여 있는 조직문화도 바꿔야 한다. 알게 모르게 여성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든가, 배려라는 미명하에 차별이 행해진다면 문제다. 물론 여성 스스로도 철저한 직업의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성의 활약이 승패를 좌우할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서 이기기 위해선 여성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