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확천금 탐욕, 감독 부실이 함께 빚은 ‘백수오 참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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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07면

지난달 30일 서울 목동에 있는 서울지방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관계자가 유전자증폭장치를 통해 백수오 유전자의 DNA를 확인하고 있다. [중앙포토]

‘가짜 백수오’ 공방이 한국소비자원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제조사인 내츄럴엔도텍은 소비자원의 시료 채취 과정, 검사 방식 등을 문제 삼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30일 “수거한 백수오 원료에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식약처는 특히 기존 백수오 감별법인 ‘대한약전법’ 방식과 소비자원이 실험한 ‘식품 중 사용 원료 진위 판별지침서’에 따른 검사(농림축산식품부 방식)에서 모두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그간 내츄럴엔도텍 측은 “농식품부 방식 검증은 공인된 방식이 아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소비자원은 “대한약전법 방식으로도 실험했으나 가짜였다”고 주장했고, 내츄럴엔도텍은 “식약처의 공식 실험 결과가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 왔다.

가짜 백수오 소동, 사회·경제적 배경 따져보니

 식약처가 소비자원의 손을 들어 주면서 논란은 종식됐다. 그러나 ‘백수오 공방’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시사점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2015년 이 시점에서 백수오 공방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사회학적·경제학적 배경에 주목하지 않으면 유사한 사례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백수오

50대 평균 자산 4억대, 시장의 가장 큰 손
전문가들은 백수오 논란의 첫째 원인으로 고소득·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꼽는다. 사회 전체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 현재 국내 50세 이상 인구수는 1731만 명에 달한다. 2004년 1099만 명에 비하면 10년 새 60%나 늘어났다. 이들 장·노년층 가운데 50대의 숫자만 현재 82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894만 명인 40대와 더불어 가장 두터운 연령층을 형성한다. 소비자 마케팅 전문가인 동덕여대 최순화 교수는 “50대는 건강한 노년을 위한 준비기간이어서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다”며 “이번에 문제가 된 백수오도 갱년기 증상 개선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50대 여성들의 관심이 폭발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여성들의 소비여력이 커진 점도 또 다른 동인(動因)이 됐다. 통계청의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베이비부머가 중심이 된 국내 50대의 평균 자산은 4억3000만원에 달한다. 전체 연령대 중 자산이 가장 많은 계층이다. 주머니가 두터워진 50대 여성들은 소비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한다. 실제 일본에서는 한 화장품회사가 ‘50세 이상을 위한 화장품’이라고 홍보했을 때는 별 호응을 얻지 못했던 제품이 ‘10년 젊어지는 화장품’이라고 홍보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급증한 사례가 있다. 소비시장에서 여성의 주도권을 나타내는 조사 결과도 있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 조사에 따르면 미국 가계 소비 규모 5조9000억 달러 가운데 여성들이 결정권을 가진 지출금액은 4조3000억 달러로 전체 소비시장의 73%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에 대한 열망 고조라는 ‘온기류’는 기업가의 탐욕이라는 ‘냉기류’를 만나면서 우리 사회에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백수오 제품에 대한 주문이 급증하자 제조업체들은 부족한 백수오 원료를 유사한 이엽우피소로 대체했다. 내츄럴엔도텍의 경우 매출이 3년 만에 200억원에서 1250억원으로 여섯 배 이상 늘었다. 백수오의 공급이 원활하기 어려웠다는 방증이다. 백수오는 재배에 보통 2~3년이 걸린다. 이에 비해 이엽우피소는 1년이면 자라는 데다 재배도 쉽고 가격도 저렴하다. 이엽우피소 100g의 가격은 2500원으로 7500원인 백수오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기업은 수익성이라는 유혹에 넘어갔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갈수록 커진다는 점도 기업들엔 매력 포인트가 됐다. 식약처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의 국내 총생산액은 2004년 2500억원에서 2013년 1조4800억원으로 10년 만에 여섯 배 늘었다. 이 중 백수오 제품 시장은 3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와 판매업체 수도 2008년 5만8000여 개에서 2013년 9만6000여 개로 늘어났다. 시장은 이렇게 성장하고 있지만 바이오 신제품의 경우 검증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엽우피소의 경우도 식약처는 “건강에 해가 없다”고 발표한 반면 대한한의사협회는 “중국 약전에도 빠져 있는 독성식물로 식용으로는 부적절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검증이 어렵다 보니 바이오업계에선 어느 회사가 위험하다거나 신기술·신제품 효능이 부풀려졌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고 말했다.

식약처의 첫 조사만 통과하면 무풍지대
감독 당국의 무능은 백수오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식약처는 지난 2월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원료를 검사했지만 별다른 문제를 찾지 못했다. 이는 소비자원이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4월 22일 발표했을 당시 내츄럴엔도텍이 강하게 반발한 배경이 됐다. 식약처는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린 지 두 달 만에 결과를 번복하면서 신뢰도에 흠집을 냈다. 식약처는 일단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증하고 나면 이후엔 제조사의 자체 검사 결과를 보고받는다. 현장에 가지 않은 채 간접 관리하는 것이다. 내츄럴엔도텍도 매달 한 번씩 검사 결과를 식약처에 보고했다. 식약처는 그 결과를 보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1년에 한 번 정도 공장을 기습 방문해 검사한다. 신영희 식약처 사무관은 “공장 내 생산 과정은 업체가 자체 관리하고, 정부는 유통되는 제품을 수거해 재검사하는 방식으로 보완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전수조사는 어렵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바이오업체 사이에선 ‘첫 조사만 잘 넘기면 된다’는 인식이 뿌리박혀 있다”며 “식약처의 감독기능이 강화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백수오 사태는 언제든 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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